신종 코로나에 여행업계 ‘사망 위기’

크루즈, 한국-중국여행 예약  줄줄이 취소

한국 여행사, 도산 위기에 무급 휴직 요구

“20년 넘게 여행사에 근무했지만 이번엔 정말 ‘아사'(餓死) 직전에 놓였다고 말 할 수밖에 없네요. 역대 최고로 힘드네요.”

여행업계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미 중국의 사드 배치 보복인 한국여행단체금지 조치에 이어, 일본 경제보복까지 더해져 큰 타격을 입었던 업계는 신종 코로나 사태로 주저 앉을 위기에 처했다.

애틀랜타를 비롯한 미국내 한인 여행사의 경우 크루즈 예약과 한국 및 중국관련 예약이 줄줄이 취소돼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내 주요 여행사들은 전반적인 해외여행 수요 위축에 각 사의 임원 주재하에 ‘긴급대책회의’를 갖는 등 대응방안을 모색했지만, 이렇다할 대안책을 내놓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산 위기를 겪는 일부 여행사는 직원을 상대로 무급 휴직 권유에 나섰고, 일각에선 업계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하다.

중국 여행 취소율이 100%에 육박하는 등 관련 업계가 타격을 받고 있다.

◇취소 위약금으로 고객과 실랑이

지난달 30일 국내 A 대형 여행사의 서울 종로 본사에서 고성이 오갔다. 해당 여행사를 통해 캄보디아 항공권을 구매한 고객이 신종 코로나 감염이 우려된다며 환불해달라고 요청했고 판매 담당자는 중국 외 지역 취소 시 약관대로 수수료를 부과하겠다고 안내하면서다. 이에 고객이 무작정 본사로 찾아와 취소 수수료를 계속 면제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요 여행사들은 여행 취소 위약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취소 처리하러 출근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문의 건수도 어마어마하다.

현재 대부분 여행사와 항공사들은 중국 본토와 대만, 마카오, 홍콩 등으로 떠나는 여행 상품 외엔 취소 시 수수료를 약관대로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중화권 외 지역으로 떠나는 여행객들의 환불 요청건이다.

여행객들의 해외여행 수요가 위축되면서 중국과 가까운 동남아시아 등 인접 국가 및 중국 관광객이 많은 유럽 국가로 떠나는 여행 상품까지 전면 환불해달라는 요청이 끊이질 않는 상황이다.

일부 여행사는 주 고객을 뺏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울며겨자먹기’로 수수료를 면제해주고 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취소현황이 역대급이란 말까지 돈다”며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고객 입장 을 고려해 중국·홍콩·마카오 취소료 면제 등 힘든 결정도 했는데, 고객들이 알아주기보다 오히려 더 큰 결정을 요구하니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하나투어와 모두투어의 지난 1월 판매 실적은 한일관계 악화에 따른 ‘일본여행 불매’ 여파에이어 신종 코로나 악재까지 겹치며 전년 대비 각각 49.7%, 23.4% 감소했다.

◇중국에 이어 ‘다낭’까지 줄줄이 취소

주요 여행사들은 중화권 상품 취소 사태가 동남아 지역까지 번지면서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동안 일본과 홍콩발 문제로 침체된 여행 수요를 끌어올렸던 베트남과 태국, 필리핀 수요마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기준으로 보면 패키지사의 경우 지역별 여행 상품 가운데 동남아시아 비중이 65%에 육박했다. 특히 ‘경기도 다낭시’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던 베트남 다낭의 경우 취소 문의가 끊이질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관건은 신규 예약이다.

B개별여행사 대표는 “신규 예약은 거의 ‘작살’났다고 보면 된다”며 “여행사 관계자들끼리는 개별·패키지 합쳐서 베트남 여행이 최소 30만명에서 최대 50만건까지 취소됐다고 추정한다”고 밝혔다.

◇’무급 휴직’ ‘신입사원 채용 취소’ 카드 내건 여행사들

일부 여행사들은 영업 부진을 호소하며 직원 대상으로 무급 휴가를 권하거나, 신입사원 채용을 취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몇몇 곳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이달부터 오는 4월까지 두 달간 1~2주 간격으로 무급 휴가와 근무를 번갈아 할 것을 요구했다.

D 패키지 여행사 관계자는 “각 부서별 책임자가 사내 메신저를 통해 직원들에게 신종 코로나 사태 관련해서 격려하며, 사기를 진작시키는 메시지를 보냈는 데 끝까지 읽어보니 ‘무급 휴가 희망자를 모집한다’ 것이 주 내용이었다”며 “그 쪽지를 본 직원들은 ‘웃프다'(웃기면서도 슬프다)는 반응이었다”고 밝혔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엔 글쓴이에 대한 ‘불쌍하다’는 의견과 함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여행업계 전체가 도산 위기에 처하여 신입사원 채용 계획을 전면 취소합니다”라는 스마트폰 문자 화면이 캡처된 이미지가 올라오기도 했다.

여행업계에선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 구조조정 바람이 부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서서히 나온다. 지난해 홍콩, 중국, 일본 등 노선 판매 부진이 이어지면서 일부 대형 여행사에선 여행상품 판매 부서를 축소하거나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다.

한편, 지난 4일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여행업 알선수수료 및 여행취소수수료 법정 공론화’를 요구하는 청원에 게시되기도 했다. 정부가 재난 사태 시 여행취소나 수수료 문제 등에 대한 법적인 조치를 취해달라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