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 입막음’ 트럼프, 역대 대통령 중 첫 기소 불명예

맨해튼대배심, 기소 가결…2016년 대선 때 성인배우에 입막음 돈지급 의혹

트럼프 “정치적 박해” 반발…전 포르노배우 “누구도 법 위에 못 선다” 일침

차기 대선 영향은 불분명…이례적 기소에 ‘유죄 확신 못한다’는 전망도 있어

美 텍사스서 첫 대선 유세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
텍사스서 첫 대선 유세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역대 전·현직 미국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형사 기소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는 2024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공화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든 상태여서 이번 기소는 차기 대권레이스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타임스(NYT)는 30일 뉴욕 맨해튼 대배심이 이날 성인 배우에게 성추문 입막음을 위한 돈을 지급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소를 결정했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변호하는 조 타코피나 변호사도 기소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AP통신에 확인했다.

NYT에 따르면 이날 대배심 소집 시간인 오후 2시 직전 뉴욕시 맨해튼의 법원 청사에 트럼프 사건 수사를 주도하는 검사 3명이 형법 책을 들고 입장하는 장면이 포착돼 대배심 표결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표결 결과는 3시간 만에 나왔다.

구체적인 혐의는 며칠 안에 공소장이 공개될 때 함께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방검사장이 이끄는 검찰 수사팀이 최근 들어 성추문 입막음 의혹에 초점을 맞춰왔다는 점에서 이와 관련한 혐의가 공소장에 적시됐을 것이 확실시된다.

성추문 입막음 의혹은 ‘스토미 대니얼스’라는 이름의 전직 포르노 배우가 지난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지난 2006년 혼외정사를 언론에 폭로할 가능성을 우려해 침묵을 지키는 대가로 그에게 13만달러를 지급했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은 트럼프의 지시를 받고 대선 직전 대니얼스와 접촉해 이 돈을 전달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가족기업인 트럼프그룹이 나중에 코언에게 13만달러에 추가 비용 등을 더해 총 42만달러를 갚아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트럼프그룹 내부 문건에 코언에게 지급한 돈을 ‘법률 자문 비용’이라고 기재해 기업 문서 조작을 금지한 뉴욕주 법률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기업 문서 조작은 경범죄에 불과하지만, 선거법 위반과 같은 또 다른 범죄를 감추기 위해 회사 기록을 조작했다면 중범죄로 기소할 수 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트럼프그룹이 지급한 돈은 당시 대선후보였던 트럼프를 위해 사용됐다는 점에서 불법 선거자금 수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날 기소 결정은 트럼프 전 대통령 개인은 물론 2024년 대선 레이스 전반에 작지 않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사상 첫 전직 대통령 기소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일단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 소속인 브래그 검사장의 “정치적 마녀사냥”이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이 보수 지지층에게 영향을 미쳐 ‘트럼프 지지세력을 결집할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세번째 대권 도전은 공화당 경선에서부터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소 결정 전부터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지자들을 향해 “항의하라”는 글을 올리며 검찰 수사를 정치적으로 활용해왔다.

그는 기소 결정 직후에도 성명을 내고 “이것은 정치적 박해이자, 역사상 가장 높은 수위에서 자행된 선거 개입”이라며 “난 완전히 무고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거나, 일부 혐의만 인정될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마녀사냥’ 주장에 더 힘이 실릴 가능성도 있다.

이번처럼 기업 문서 조작과 선거법 위반을 결합하는 형태의 기소는 전례가 없다시피 한 것이어서 유죄를 확신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재판부가 기각하거나 공소 제기된 혐의를 제한할 수도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현재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 거주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검찰과 협의해 조만간 뉴욕으로 돌아와 맨해튼 지검에 출석한 뒤 지문을 채취하고 사진을 찍은 뒤 형식적인 체포 상태에서 법원으로 이동, 기소인부절차를 진행해 공소 사실 인정 여부에 대해 답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기소된 만큼 보통의 피고인처럼 수갑을 차고 포토라인에 설지는 불투명하다.

기소 결정과 관련해 성추문 상대인 대니얼스는 변호인을 통해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다. 진실과 정의가 승리하게 해야 할 때”라고 밝혔으나, 브래그 검사장 측은 언론의 질의에 답변하지 않았다.

브래그 검사장은 전임자 때부터 거의 5년 가까이 묵혀 ‘좀비 사건’으로 불리던 성추문 입막음 의혹도 충분히 기소할 수 있다고 판단해 올해 초 대배심을 구성하는 등 적극적으로 기소를 추진한 바 있다.

firstcirc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