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세탁기 관세로 미국 소비자만 ‘덤터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내 제조업체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면서 수입 세탁기에 매긴 관세가 더 증폭돼 미국 소비자에게 부담으로 돌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시카고대학과 연방준비제도(Fed)의 경제학자들이 2018년 삼성과 LG 등의 세탁기에 부과된 관세의 영향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고 보도했다. 연구에 따르면 연간 미 소비자들은 세탁기와 건조기에 15억달러(약 1조7229억원)를 더 추가로 소비하고 있었다. 세탁기 한 대당 86달러, 건조기 한 대당 92달러를 더 낸 셈이다.

미국은 지난해 삼성·LG전자 등 수입 세탁기에 대해 120만대 이하 물량에 20%, 그 이상에 50%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했다.

소비자가 더 낸 가격으로 미 정부의 재정에 도움이 된 것도 아니었다. 추가부담분의 10%도 안되는 부분이 미 재무부로 유입되었고 나머지 90% 이상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남았다.

연구자들은 세탁기에 관세로 부과된 금액이 8200억달러인데 비해 소비자들은 15억달러를 추가로 지불했다며 그 막대한 차액이 해외 기업들과 국내 기업들의 가격 인상때문에 초래됐다고 설명했다.

즉 관세 부담분을 해외 기업들은 세탁기 가격에 전가했고 이에 따라 미국 내 생산자들은 관세를 내지 않음에도 덩달아 가격을 올려 여분의 몫을 챙겼다는 설명이다. 국내 기업의 가격인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세탁기 시장엔 일부 기업에만 참여하고 있고 미국 기업들의 시장 독점력이 강해서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미국 내와 해외 가전업체들은 관세가 추가로 부과되지 않은 건조기 가격까지 인상했다. 소비자들이 세탁기와 건조기를 묶음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있기에 기업들이 세탁기 가격 인상 요인을 건조기 가격 인상으로 일부 상쇄해 버린 것이다.

지난해의 세탁기 관세 부과는 미시간 주 기업인 월풀이 삼성과 LG 등의 저가 공세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면서 시행됐다. 당시 월풀의 제프 M. 페티그 회장은 관세를 ‘노동자와 소비자의 승리’라고 환영하면서 “이번 (관세) 발표는 거의 10년간의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오하이오, 켄터키, 사우스캐롤라이나, 테네시주에서 새로운 제조업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세탁기 관세가 정작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미국에 본사를 둔 세탁기 제조업체들이 관세 부과 덕에 약 1800개의 일자리를 더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고용 창출에 약 15억달러의 총 비용이 소비자에게 발생했다. 새로 창출된 모든 일자리 하나 당 약 81만 5000달러의 비용이 든 것이다.

이 수치는 다른 산업의 관세 대비 추가 일자리 창출 비용과 거의 일치하면서 보통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에 드는 비용인 3만달러를 대폭 상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