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방호벽 뚫어서 ‘돌파감염’?…명칭의 오해와 진실

‘백신실패’ 느낌주지만 실제론 백신 잘 작용한다는 의미

전문가들 “‘백신 후 감염’으로 부르는 것이 좋다” 권고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도 코로나에 걸리는 ‘돌파감염'(breakthrough infection)에 대해 용어가 적절하지 못하다며 중립적인 어감의 다른 용어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주로 미국의 경우인데 국내 전문가들도 “일리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최근 CNN의 의학전문기자 산제이 굽타는 기사를 통해 “돌파라는 단어는 갑작스럽고 극적인 어떤 중요한 발견인 듯한 느낌을 주는데, 특히 백신의 면역 효과를 파괴하고 감염이 일어난 것으로 묘사되면서 코로나19 백신이 효과가 없다는 신호로 잘못 해석된다”고 지적했다.

에모리대 의대 전염병학과의 카를로스 델 리오 박사는 CNN에 “나는 이 용어가 싫다. 코로나19에 쓰이면서 이제는 ‘효능 부족’과 같은 용어가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예일대 의대 감염병학 제이미 메이어 교수 역시 미 건강전문 사이트 헬스닷컴에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백신이 실패한 것처럼 들리게 하기 때문에 이 용어를 쓰기 싫어한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백신은 원래 위중증이 되거나 죽는 것을 막기 위해 개발된 것이었고 감염을 방지하는 것은 ‘케이크 위의 체리 장식’처럼 나중에 (보너스로) 주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계 자체도 (호흡기병의 경우) 상부기도(목이나 기도)가 아닌 하부 기도(폐)의 질병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백신이 만들어내는 항체 역할을 하는 단백질인 면역글로불린은 바이러스를 차단할 수 있도록 혈액에서 폐로는 쉽게 옮겨지는데 코나 목의 상기도의 섬유를 관통하기는 힘들다.

그렇기에 과학자들은 코로나19 백신이 델타 변이 이전의 변이들에서 감염 방지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것은 매우 행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델타 변이가 돌파감염이 잘 된다 해도 중증이나 사망에 대한 보호 효과는 백신으로 보호받은 이들과 큰 차이가 없기에 백신의 실패도 아니라는 설명도 잇따른다.

또 백신 접종이 많이 이뤄질수록 절대적인 감염자 수가 높게 나타나고, 시간이 지나서 면역력이 감소하는 것 모두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강조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의 모니카 간디 교수는 “인체가 지금까지 생산한 항체를 모두 갖고 있는다면 우리의 혈액은 반죽처럼 뻑뻑해질 것”이라며 “항체 자체는 약해지더라도 기억B세포가 나중에 항원이 들어오면 즉각 항체를 만들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굽타 기자는 “백신은 우리 주위에 ‘요새’를 건설하는 게 아니라 ‘보초’나 ‘경계병’을 세우는 것에 가깝다”면서 “돌파감염이 아닌 새로운 이름, 즉 ‘백신 후 감염'(post-vaccine infection)으로 부르는 게 어떤가 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미 국립보건원 프랜시스 콜린스 원장도 이 용어가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마치 백신이 효과가 없는 것처럼 들리게 하기 때문에 끔찍하다. 백신은 효과가 있다. 그러니 언어가 이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자”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지금까지 잘 사용해오던 용어를 굳이 바꿀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하는 입장이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용어에 대한 이의 제기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면서 “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인데 부정적인 인상은 주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하지만 “바꾸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런데 용어를 그대로 두고 일반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사실을 알리는 것도 방법 아닐까”라고 말했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돌파라는 말 때문에 용어를 바꾸는 것은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쓰고 의학 교과서에서 써온 말을 다 부인하는 게 된다”면서 “코로나19 백신의 90% 보호 효과는 10%의 돌파를 전제하는 것이고 계속 알리다 보면 일반인들도 오해없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 예방접종센터 모습. 2021.8.4/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