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 충돌…”성 자유 보장”vs. “여성 존엄성 훼손”

“수입금지” 청와대 청원 25만명…”선진국 허용” 청원도

“성기구, 치료용으로도 사용” “여성 도구화 관점 공고화”

“본인도 모르게 본인의 얼굴이 리얼돌의 얼굴이 된다면 정신적 충격은 누가 책임집니까? 리얼돌 수입·판매 금지해주세요.”

지난 6월 사람의 신체를 본떠 만든 성인용품 ‘리얼돌’의 수입을 허용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과 관련해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대법원이 리얼돌 수입 제한은 국민의 기본권 침해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리얼돌 수입을 금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5만명이 넘게 동의한 상태다.

특히 원하는 얼굴로 ‘커스텀 제작’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전해지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해당 청원인은 “연예인이나 지인의 얼굴과 음란사진을 합성해 인터넷에 게시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리얼돌도 안 그러란 보장은 없다”며 새로운 형태의 범죄행위로 발전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리얼돌, ‘풍속을 해치는 물건’?…법원 “성기구 수입 금지 신중해야” 최종 판단

이번에 문제가 된 ‘리얼돌’ 수입논란은 지난 2017년 한 성인용품 수입업체가 ‘리얼돌’ 수입 통관이 보류된 데 행정처분취소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인천세관이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수입을 보류처분하자 이를 취소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해당 제품은 길이 159㎝, 무게 35㎏으로 성인 여성 신체와 비슷하게 만들어진 실리콘 인형이다. 팔, 다리, 손가락, 허리 등이 사람의 관절운동범위만큼 구부러질 수있도록 만들어졌으며, 성기와 항문 형태의 외관에는 구멍이 뚫려있다.

성인용품 수입업체는 “남성용 자위기구로서의 기능적인 측면에 중점을 둔 제품일 뿐”이라며 “(해당 제품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사람의 특정 성적부위를 묘사하지 않았고, 개인적 용도로 사용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물품을 전체적으로 관찰했을 때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사람의 특정한 성적 부위를 적나라하게 표현·묘사한 것으로 보인다”며 수입업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사람 형상의 표현에 관한 구체성이나 적나라함의 정도만으로 음란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성적 혐오감을 줄 만한 성기구가 공공연하게 전시·판매됨으로써 그러한 행위를 제재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이 아니라면 성기구를 음란한 물건으로 취급하여 수입 자체를 금지하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2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줬다.

◇”피해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규제하나”vs”신체 그대로 형상화…존엄성 훼손”

리얼돌 수입 허가에 찬성하는 측은 리얼돌도 그저 하나의 ‘성기구’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A씨(29)는 “남에게 피해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성욕을 해소하겠다는 데 리얼돌이라고 안 될 이유가 뭐냐”며 “리얼돌이 안 된다면 다른 자위기구도 규제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정신과 전문의 B씨(40)도 “여자 리얼돌만 있는 것처럼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데 그 반대로 (여자가 사용할 수 있는) 기구나 인형도 많다”며 “일부 성욕, 성기능 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치료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리얼돌 수입 금지’ 청원에 뒤이어 등장한 ‘리얼돌의 수입은 허용돼야 합니다’라는 청원에서, 해당 청원인은 “미국, 일본, 중국 어떠한 선진 주변국도 리얼돌을 제한하는 나라는 없다”며 “최소한의 남성 인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반대하는 사람들은 리얼돌이 여성의 존엄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리얼돌 수입 금지 청원을 올린 청원인은 “여성의 얼굴과 신체를 하고 있지만 성적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실제 여성들을 같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도 “여성의 신체를 그대로 형상화하는 리얼돌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성폭력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윤김 교수는 “리얼돌 허용은 곧 남성의 성욕은 공격적이고, 배출해야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여성을 도구화할 수 있다는 관점을 공고히할 수 있다”며 “예뻐해주다가도, 언제든지 폭력을 가할 수 있고 대체 가능하다는 ‘인형’의 특징은 결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뉴스1

인천세관본부 조사관이 5일 인천 중구 항동 인천세관본부 강당에서 성인용 진신인형(리얼돌)을 의류제작 마네킹으로 둔갑, 밀수입 위반한 일당 검거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성인용 전신인형(리얼돌)은 풍속을 해하고 여성의 수치심을 현저히 자극할 우려가 높아 세관의 성인용품 통관심사위원회에서 통관을 불허하고 있다. 2017.4.5./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