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여성 낙태옹호 판결…또 진보 손들어줘

‘보수 우위’ 불구 낙태권리 제한 루이지애나법 무효화

백악관 “비선출직 대법관들이 주정부 권한 침해” 비판

연방 대법원이 여성의 낙태 진료 및 시술 기회를 제한하는 루이지애나주 법은 낙태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결, 진보진영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또 내놨다.

AP통신에 따르면 연방대법원은 29일 주내의 낙태 진료소 숫자를 제한하고 낙태 시술을 할 수 있는 의사 수에도 제한을 두는 루이지애나주의 낙태 의료시설 법에 대해 헌법이 보장한 여성의 낙태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 [로이터=연합뉴스]
이 법은 약 30마일(48㎞) 내에 두 개 이상의 낙태 진료 시설을 두지 못하고 시술도 환자 입원 특권을 가진 의사만 할 수 있도록 규정, 낙태 권리를 크게 제한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낙태 옹호론자들이 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루이지애나 법은 낙태 시술 제공자의 수와 지리적 분포를 급격히 감소 시켜 많은 여성이 주 내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를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016년에도 대법원은 텍사스주의 거의 동일한 법률을 무효로 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9명의 대법관 의견이 팽팽히 갈린 끝에 5 대 4로 낙태 권리 옹호로 결론이 났다. 진보 4명에 보수 성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가세했다. 미 대법원은 보수 5명, 진보 4명의 구도로 평가받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루이지애나의 입장을 지지해왔다.

보수 성향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소수의견에서 루이지애나의 법률은 합법적이라면서 이번 판결은 “근거 없는 낙태 법리를 영구화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로 지난 15일 성 소수자의 직장 내 고용 차별 금지, 18일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 제도(DACA·다카) 폐지 추진에 제동을 건 판결에 이어 잇따라 진보 쪽 손을 들어줬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세 번 모두 진보 측 의견에 동조했다.

다만 로버츠 대법원장은 별개 의견을 내고 자신은 루이지애나 법이 위헌이라고 본 게 아니라 기존 대법 판례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여지를 남겼다. 특정 쟁점에 선례가 확립돼 있을 때 이에 따라 판단한다는 ‘선례 구속의 원칙’에 따랐다는 것이다.

그는 “선례 구속의 원칙(doctrine of stare decisis)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비슷한 사건들을 같게 취급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루이지애나 법은 낙태에 대한 접근에 있어 텍사스 법이 부과한 것과 같은 심각한 부담을 부과한다”며 전례에 따라 루이지애나 법도 유지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4년 전 텍사스주 법을 무효로 할 때 반대 의견에 동참했다며 “나는 그 사건이 잘못 결론 내려졌다고 계속 믿고 있다”면서도 이날 사안은 선례가 옳고 그른지의 문제가 아니라 선례를 고수할 것인지 여부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대법원장은 앞선 판결에서 법원의 일부 분석에 의문을 제기하며 향후 소송에서 보수 성향 동료들 편을 들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한편 백악관은 대변인 성명을 내고 “유감스러운 판결”이라며 대법원이 루이지애나주의 정책을 파괴해 산모의 건강과 태아의 생명을 모두 평가절하했다면서 “선출직이 아닌 대법관들이 자신의 정책 선호에 따라 낙태에 찬성해 주 정부의 자주적인 특권을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보수 대법관 충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 시대의 첫 주요 낙태 판결에서 아슬아슬하게 진보 쪽이 이겼다며 낙태는 대선에서 더욱 쟁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법원은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 낙태는 여성의 헌법적 권리라고 인정했다. 1992년에는 대법원이 이를 재확인하며 낙태 권리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법률을 금지한 판결도 내렸다고 로이터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