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버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의 셀카가 불편한 이유는?

미국 언론인들 “언론의 존재 이유는 권력에 대한 감시”

취재원과 개인적인 친분 과시하면 곧바로 ‘커리어 자살’

본보 이상연 대표가 한국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www.newsverse.kr)에 게재한 칼럼을 전재한다. /편집자주

#1

지난 2014년 프랑소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을 가질 당시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 기자였던 토마 위데르는 양국 정상을 배경으로 셀카(Selfie)를 찍어 자신의 SNS에 공개했다. 해당 사진에는 위데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백악관 관계자가 이를 제지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고, 이후 백악관은 대통령 참석 행사에서 취재기자들이 셀카를 찍으면 안된다는 규칙까지 만들었다.


르몽드 기자의 백악관 셀카/@ThomasWieder via Twitter

#2

지난 2020년 11월 CNN의 백악관 출입기자인 케이틀런 콜린스는 대선결과 불복 선언 이후 기자단과 접촉을 갖지 않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질문에 3주만에 대답했다며 동료 기자들과 셀카를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비록 동료 기자들끼리 찍은 사진이지만, ‘트럼프에 반감을 가진 기자들’ 사진이라는 점에서 “객관적이어야 할 기자가 무슨 영웅이나 된 듯이 행동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CNN 기자가 동료 기자들과 찍은 셀카/ Kaitlan Collins

#3

한국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아 최근 대통령실 기자단과 오찬을 가진 뒤 일부 출입기자들이 윤 대통령과 같은 포즈를 취하며 찍은 셀카가 공개됐다. 이에 앞서 미국 국빈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공군 1호기 안에서 여기자들이 김건희 여사를 중심으로 찍은 셀카가 대통령실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됐다가 즉각 삭제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공군1호기에서 출입기자들이 김건희 여사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미국 기자들은 대부분 작은 지역 언론사에서 인턴으로 출발해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대형 언론사에 스카웃되기 때문에 자신의 경력 관리에 온 힘을 쏟는다. 처음부터 대형 언론사에 취업해 회사의 취재문화와 정치색에 동화하는 한편 회사로부터 일정 부분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한국 기자들과는 전혀 다른 토양에서 언론계 생활을 시작한다. 즉 자신이 속한 언론사에서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독자와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직접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취재현장에 나서는 것이다.

독자가 궁금해하는 문제를 파고 들기 위해 취재원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밤을 새워 심층 취재를 하는 기자들은 제대로 된 저널리스트로 인정받고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 나간다. 미국저널리스트협회의 지난해 조사결과 미국 언론인들의 중간 연령은 47세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통신사 56세, 일간지는 53세로 연령대가 높았고 가장 젊은 분야는 온라인 미디어(41세)와 뉴스 매거진(40세)으로 나타났다. 한국에 비해 훨씬 경험 많은 기자들이 현장에서 뛰고 있는 셈이다.

특히 정치부 기자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인들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권력에 대한 감시’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위임한 권력이나, 대중의 인기를 바탕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인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 실제 미국저널리스트협회 조사결과 “미국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묻는 질문에 전체 언론인의 84.6%가 ‘정부와 권력에 대한 감시견(watchdog)역할’이라고 답했다.

이같은 감시 역할 때문에 미국 기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바로 취재원과의 올바른 관계다. 특히 권력을 갖고 있는 취재원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관계가 아닌,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으로 비쳐질 경우 ‘커리어 자살(Career suicide)’에 버금가는 악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대통령이나 영부인, 또는 백악관 관계자들과 찍은 셀카가 없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기자는 오직 기사로 말한다”고 교육 받아온 미국 기자들이 취재원과 셀카를 찍거나 취재 현장의 모습을 SNS에 올리는 행동은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미국에서 저널리즘 교육을 받으면서 가장 흔히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기자의 수준은 취재원보다 높을 수 없다(You are only as good as your sources)”는 것이다. 이 말은 정확한 취재와 기사 작성을 위해서는 믿을만한 취재원이 필요하다는 뜻 외에도 취재원이 전하는 말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취재원이 정치인인 경우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 과장된 표현을 사용할 수도 있는데 그 말을 여과없이 전하는 행위는 정치인이 아닌 기자 자신의 파워를 높이려는 의도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언론인 경력을 정계 진출의 지렛대 정도로 여기는 한국의 정치문화와는 달리 미국에서 기자 출신 정치인이 매우 드문 점도 주목할 만 하다. 권력을 감시하고 내부 정보를 잘 알고 있는 언론인이 정계에 진출하는 것 자체를 부도덕하게 보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 창업주인 마이클 블룸버그 정도가 예외이긴 하지만 언론인이 아니라 경영자라는 이력을 내세워 출마했다.

한국 대통령실 기자들의 ‘권력형 셀카’가 미국에서 유독 불편하게 보이는 이유도 이와 같은 언론 윤리 때문이다. 미국 언론인들이 이들 셀카를 봤다면 그들의 또다른 금언인 “한 국가의 수준은 그 나라 언론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을 떠올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