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이상연의 짧은 생각 제47호

유승준과 국민감정법

한국에서 가장 상위 법률은 헌법이 아니라 ‘국민감정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니컬한 농담이지만 그만큼 여론의 힘이 강력하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법률적 해석이 필요한 문제까지 감정으로 해결하려 하면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어제 대법원의 판결로 한국 재입국의 길이 열린 유승준(미국명 스티브 유)은 한국 국민감정법에 따르면 사형에 해당하는 케이스입니다. 재미동포지만 병역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다 입대 직전 미국으로 도주해 시민권을 취득한 사람이니 쉽게 용서될리 만무합니다. 대법원 판결에 앞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10명중 7명은 유승준의 재입국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법무부가 내린 ‘무기한 입국금지 조치’가 신중하지 못한 일방적인 행정지시라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구속력이 없는 이러한 지시에 의존해 외교부, 구체적으로는 LA총영사관이 아무런 행정적 재량권을 사용하지 않고 비자발급을 거부해 ‘재량권 불행사’라는 위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 판결의 포인트입니다.

결국 국민감정에 충실히 따르기 위해 행정기관이 절차상의 하자를 저질렀기 때문에 법률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유승준 같은 케이스가 양산되는 것을 막으려면 법률과 조례 등을 치밀하게 바꿔야 하는데 그 대신 즉흥적인 행정지시나 처분 등으로 그때 그때 국민감정에 부응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유승준의 ‘대역죄’ 때문에 가장 큰 곤란을 겪는 사람들은 바로 재외동포 차세대들입니다. 유승준이 소송을 내고 행정처분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때 마다 정부가 한국입국 절차나 재외동포 비자 규정 등을 바꾸면서 혼란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무리하게 변경했던 법률이나 행정처분이 있는지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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