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이상연의 짧은 생각 제27호

 알 권리와 선정성의 경계

한국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한 업무가 이른바 ‘사츠마와리‘입니다. 경찰서를 순회한다는 일본말인데, 아직도 한국 신문업계는 일본식 용어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무식하게 자기 관할(나와바리)의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기삿거리를 찾는 행동인데 경찰 담당기자를 부르는 말로도 사용됩니다.

경찰 담당기자는 갖가지 사건, 사고를 커버하는 일종의 ‘막일꾼’ 입니다. 특히 대형 사건이 터지면 집에 들어가기 힘들어지니까 거지 꼴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견습기간 6개월 동안 아예 경찰서 2진 기자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하리코미’를 시켜 거지 꼴로 살 수 있는 훈련을 하게 합니다.

제가 기자생활을 시작할 때 유난히도 대형사고가 많이 터졌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고, 대구백화점 인근 지하철 공사장에서 폭발사건이 일어나 무고한 생명이 많이 희생됐습니다. 특히 삼풍백화점 사고때는 제비뽑기를 해서 붕괴된 지하 현장에 최초로 들어가 현장 취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토막살인 사건이나 사체 유기사건 등에 불려다니며 험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수많은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만나면서 삶과 죽음은 바로 눈앞에 맞닿아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했습니다. 독자의 알 권리와 언론사라는 사기업의 이익, 개인적 욕심과 야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고뇌가 제게도 조금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배웠던 것은 한 사람의 희생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겠다는 마음과, 독자의 ‘알 권리’ 충족이라는 명목으로 ‘주목 끌기용’ 선정 보도를 하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한인 언론사들이 수년전 둘루스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에 대한 뒤늦은 재판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몇시간씩 법정에 나가 취재를 하는 기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몇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 뉴스레터를 쓰는 날이 아닌데도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우선 사건의 명칭을 살인 피해자의 직업을 따라 부르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것도 가해자도 아닌 피해자의 직업을 지속적으로 사용해 사건을 보도하는 의도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또 증인으로 출석한 사건 발생업소 여주인의 얼굴 사진을 1면에 사용하는 것을 보고 “이건 좀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지아주를 비롯한 대부분의 미국 법원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미리 신청한 취재진에게 재판과 관련된 모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하지만 저널리스트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그대로 전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의 아니게 자신의 업소에서 시작된 범죄로 인해 수년간 마음 고생을 하다 법정까지 서게 된 여주인의 얼굴 공개가 과연 독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의도 뿐이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러다 법정 증거로 채택됐을 피해자의 시신 사진까지 공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듭니다.

매일 1면톱으로 보도할 만큼 충분한 법적 공방과 기사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고민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온라인 기사의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해 선정적인 제목을 다는 행위를 흔히 ‘낚시’라고 하는데, 관심을 끌기 위해 무리하게 큰 비중으로 보도하는 것도 일종의 낚시입니다. 삶과 죽음처럼, 저널리즘과 선정성도 백지 하나로 맞닿아있는 사이입니다.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