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분규 동포단체의 기준은?

이상연의 짧은 생각 제122호

전직 한인회장들과 한인 단체장들이 대거 불참해 ‘반쪽행사’가 된 지난 28일 제34대 애틀랜타한인회장 취임식에서 김영준 애틀랜타총영사가 전한 축사가 한인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 총영사는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할 행사가 이렇게 무겁고 답답한 분위기에서 열리게 돼 안타깝다”면서 “새로 출범하는 한인회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을텐데 지혜를 모아 화합하는 방향으로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한인회의 출범을 기뻐하는 축사라기보다는 신구 한인회에 모두 경종을 울리려는 경고성 메시지로 들리는 내용입니다.

사실 축사 내용보다 더 화제가 된 것은 김 총영사의 참석 사실 자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참을 예상했지만 한인회측이 제공한 축사 명단에 포함돼 있어 현장의 한인 인사들이 놀라는 분위기였습니다.

지난 9월 21일 열린 동남부연합회 정기총회에서 ‘분규단체’인 미주총연 박균희 회장과 같은 테이블에 앉혔다고 화를 냈던 총영사였기에 회장 선거과정의 문제로 소송을 당한 단체장의 취임식에 나타나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축사를 부탁받은 다른 단체장들도 모두 다른 일정과 건강 문제 등으로 불참하거나 부회장 등이 대독을 한 행사여서 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행사가 시작되고 30분이 지나서도 도착하지 않아 “결국 오지 않나보다”라는 말이 나왔고, 어쩔 수 없이 뒷 순서였던 임형기 민주평통 수석부회장이 먼저 축사를 했습니다. 이 축사 도중에 총영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일부에서는 “현장에서 분위기를 살피던 영사가 와도 될 것 같다고 연락해 온 것 같다”고 수근거리기도 했습니다.

총영사의 참석에 대해 어떤 이들은 “소송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한인회가 2개로 나눠지지 않았으니 분규단체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영사에게 물었더니 “새로운 한인회를 축하한다는 의미보다는 지난 2년간 수고한 전임 회장과 집행부를 격려하기 위해 참석한 것”이라고 다른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한국 정부가 규정하는 분규단체의 확실한 정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재외동포재단이 정부예산을 지원할 때 배제하는 단체의 정의는  ‘대표성에 문제가 있거나 분규 중인 단체’라는 애매한 것입니다. 김영준 총영사는 정작 취임식에 참석하고는 ‘우울하고 답답한 행사’라고 비판해 총영사관과 한국 정부의 입장이 무엇인지 더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번 한인회 사태와 관련해 총영사관은 “관심은 갖고 있지만 개입은 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해왔지만 사실은 총영사와 가까운 한인 인사들을 통해 간여했다는 정황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시민의 소리 유진리 사무총장은 최근 기자에게 “갑자기 화해를 주선하겠다고 나선 인사들을 만나보니 우리측 움직임이 ‘일부러 흘린’ 내용까지 총영사관에 전달되고 있었다”면서 “정보만 수집하지 말고 총영사관의 입장이 무엇인지 확실히 밝혀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취임식 참석과 ‘축사 아닌 축사’를 지켜보니, 그동안 이러저러한 노력을 했던 총영사관이 이제는 포기하고 사태를 지켜보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태도와 관련해 오는 1월 4일 열리는 동남부연합회의 신년하례식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연합회는 이번에는 또 다른 ‘분규단체’인 남문기 회장쪽 미주총연의 폴 송 수석부회장을 초청한다고 하는데 김영준 총영사의 참석 여부가 궁금해집니다.

끝으로 한인회의 분규단체 지정 여부가 뭐 그리 중요한 문제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일반 한인들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단지 한인회장과 간부들이 1년에 한 번 열리는 세계한인회장 대회에 가서 ‘폼’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코리안페스티벌 등 행사에 대한 한국정부의 예산지원이 중단된다는 손실이 있습니다. 물론 그보다 더 큰 손실은 전직 회장단의 성명대로 ‘애틀랜타 한인사회에 오점을 남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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