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미국 남부, 인종차별의 자화상

이상연의 짧은 생각 제173호

 

어제 유튜브에 충격적인 동영상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조지아주의 한 라디오 방송국이 올린 짧은 대시캠(블랙박스) 비디오였는데 백인 3명이 차를 몰고 조깅하던 흑인 청년 1명을 쫓아가 총으로 살해하는 장면이 생생히 찍혀 있었습니다.

내용이 내용인지라 유튜브는 3시간만에 해당 동영상을 삭제했지만 이미 소셜미디어와 다른 뉴스매체는 이 동영상을 그대로 게재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지난 2월 중순 현대글로비스의 자동차 수송선이 전복돼 한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브런즈윅의 한 주택가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문제의 백인 가운데 2명은 부자 관계로 아버지는 전직 경찰입니다. 이들은 조깅하던 흑인 청년이 강도라고 ‘확신’해 쫓아갔고 “흑인이 먼저 공격해 정당방위로 총을 쐈다”고 경찰에 증언했습니다. 사건을 맡은 경찰과 검찰은 살해당한 흑인 청년에게 총기관련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이들의 말만 믿고 기소는 커녕 체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이 문제의 동영상이 전세계에 공개된 것입니다. 동영상을 올린 방송국은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동영상을 전달받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공개를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애틀랜타 K 뉴스도 안타깝고 잔혹한 살인 장면이 포함된 동영상이지만 공개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더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든 일은 경찰과 검찰이 이미 이 동영상을 입수해 확인한 뒤에도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는 사실입니다. 동영상이 공개되자 GBI(조지아수사국)는 수사 자료인 동영상이 방송국에 유출된 경위를 조사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동영상 때문이었는지 사건을 새로 수사하고 있는 지방검사는 어제 모든 증거를 대배심(grand jury)에게 제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확히 “기소하겠다”는 표현은 안했지만 결국 백인 부자는 법의 심판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저를 정말 화나게 한 것은 이 사건의 진상이 조지아주의 언론이 아닌 뉴욕타임스를 통해 상세하게 공개돼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는 사실입니다. 지역 대표언론이라는 AJC는 이 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않다가 동영상이 공개된 후에야 주요기사로 실었습니다. 미국 남부의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지는 답답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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