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길들일 것인가 휩쓸릴 것인가…’리버’

브라운대 로런스 스미스 교수 “인류 문명을 형성한 건 강”

강을 등지고 발달한 문명
강을 등지고 발달한 문명 [AP=연합뉴스]

40억 년 전쯤, 갓 생겨난 지구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물은 땅에 스며들었고, 그렇지 못한 빗물은 개울과 강을 거쳐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강의 임무는 단 하나였다. 모든 것을 아래로, 더 아래로, 결국 바다까지 내려보내는 것이었다. 강은 바다에 도달해 퇴적물을 쏟아낸 뒤 소멸했다. 소멸한 강은 다시 비가 되어 지상으로 내려와 침식, 평탄화, 운반, 퇴적 작용을 반복했다. 강을 중심으로 물은 그렇게 오랫동안 순환했다.

로런스 C. 스미스 미국 브라운대 교수가 쓴 ‘리버: 지리학자의 시선으로 보는 강의 두 얼굴'(시공사)은 강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지구과학, 역사, 천문학, 지리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을 넘나들며 강의 역사를 추적한다.

책에 따르면 인간의 문명은 강과 함께 시작했다. 이른바 4대 문명이라 불리는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 문명은 모두 강 주변에서 탄생했다. 고대 이집트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치수'(治水)였다. 왕조의 명운은 치수에 의해 결정됐다.

나일강의 수위가 낮아졌을 때는 어김없이 폭동이 일어났다. 내란, 살인, 약탈, 무덤 도굴 같은 무정부 상태가 이어졌다. 제6왕조는 가뭄에 따른 폭동으로 멸망했다. 이에 이집트 왕들은 나일강 수위를 측정할 수 있는 ‘나일로미터’를 제작해 나일강의 홍수 진행 상황을 추적했다. 이는 이집트를 지배한 로마 시대까지 이어졌다. 대(大) 플리니우스는 나일로미터와 관련해 이런 기록을 남겼다.

“12큐빗(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의 길이·1큐빗은 약 45㎝): 기근으로 인한 사망, 13큐빗: 굶주림, 14큐빗: 만족, 15큐빗: 대만족, 16큐빗: 만사형통”

침수된 거리
침수된 거리 [AP=연합뉴스]

강 사이에 자리 잡은 땅이라는 뜻의 ‘메소포타미아’에서도 강은 문명의 근간이었다. 경제생활은 물론, 법과 제도,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관개 농업은 지역 경제의 주요 버팀목이었다. 이 지역 대표적 문학작품인 ‘길가메시’에도 강은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심지어 강은 판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가장 오래된 법전인 함무라비 법전에 따르면 마법을 부렸다고 의심받는 남성이나 부정을 저질렀다고 의심받는 여성에 대한 판결과 처벌은 유프라테스강이 떠맡았다. 피고인을 강물에 던진 뒤 생존하면 무죄, 익사하면 유죄였다.

강의 위상은 인더스 문명이나 황하 문명에서도 높았다. 인더스 문명이 발발한 파키스탄과 인도 북서부 지역에서는 배관 체계가 발견될 정도로 치수 사업이 활발했다. 중국의 우 임금은 치수에 성공해 임금 자리에 올랐다.

함무라비 법전 점토판
함무라비 법전 점토판 [연합뉴스 자료사진]

강은 정치적 경계를 나타내는 방어 장벽이었던 탓에 빈번하게 점령의 목표가 되기도 했다. 루비콘강을 건넌 카이사르, 델라웨어강을 건넌 조지 워싱턴, 뫼즈강을 건넌 히틀러처럼 역사적 전환점에는 언제나 강이 있었다.

책에는 강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전쟁, 자연재해, 음식, 기후 온난화, 운하, 환경운동, 빙하, 인종 차별, 데이터 등 장르를 넘나드는 이야기들이 마치 ‘천일야화'(아라비안나이트) 속 장면들처럼 면면히 이어진다.

“인류의 문명을 형성한 것은 도로도, 기술도, 정치 지도자도 아니다. 인류의 문명을 형성한 것은 바로 강이다. 강은 국경을 열었고, 도시를 건설했으며, 국경을 규정했고,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 강은 생명을 촉진하고, 평화를 이룩하며, 권력을 제공하고, 갑작스레 심술을 부려 자신이 가는 길 앞에 놓인 모든 것을 파괴한다. 인간이 강을 다스리는 법을 점점 더 많이 터득해 심지어 족쇄까지 채웠지만, 강은 고대의 힘으로서 여전히 인간을 지배한다.”

추선영 옮김. 444쪽.

책 표지 이미지
책 표지 이미지 [시공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