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최병일 동남부연합회장의 약속

취임초기 약속 파기…”공인-개인 영역 구분 못하고 분열조장 우려”

지난해 9월19일 박선근 초대 동남부한인회연합회장이 갓 선출된 최병일 연합회장과 홍승원 이사장, 안순해 수석부회장 등 임원들과 기자단을 초청해 오찬행사를 가졌다.

이날 박 회장은 차세대 후원금으로 매년 1만달러를 전달하겠다고 약속하며 “제발 분열된 미주총연 등에 신경쓰지 말고 오로지 동남부 한인들만을 바라보며 일해달라”고 당부했다.

지금까지도 분규를 겪고 있는 미주한인회총연합회와 미주한인회장협회의 다툼에 개입하지 말고 동남부 한인사회, 특히 차세대를 위한 사업에 전념에 달라는 충언이었다. 이에 최병일 회장과 임원진은 “동남부 한인사회를 위한 일에 매진하겠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취임 이후 최병일 회장은 ‘수상한’ 행보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분규 단체 가운데 미주총연과의 법정 소송 끝에 미주총연이라는 이름 대신 미주한인회장협회라는 이름으로 변신한 쪽과 밀착관계를 맺은 것이다.

스스로 한인회장협회 동남부권역회장을 맡았고 협회 임원들을 애틀랜타에 초청해 비공개 행사를 열었다. 이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주한인회장협회 총회에 참석하고 지난 주에는 협회 비상대책위원회를 초청해 애틀랜타한인회관에서 행사를 여는 일까지 벌였다.

이 때 마다 최 회장이 반복하는 해명은 “동남부연합회장 자격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며 양 단체의 통합을 위한 순수한 노력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미주한인회장협회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사실이 아님을 바로 알 수 있다. 동남부한인회연합회가 미주한인회장협회 산하단체로 버젓이 등록돼 있고 동남부연합회 임원들의 명단까지 모두 회원으로 올라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 회장이 미주한인회장협회 모임에 참석하느라 수백마일을 달려와 어렵게 모인 동남부연합회 자문위원 회의에 불참해 참석자들이 크게 노했다고 한다. “분규단체에 기웃거리지 않고 동남부 일에 전념하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깬 셈이다. 한 전직 회장은 기자에게 “동남부연합회는 창립 이래 40여년간 한 번도 분규가 발생하지 않았던 전세계적인 모범  한인단체”라면서 “최병일 회장의 편향적인 모습으로 결국 동남부 한인사회에도 내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더 큰 문제는 최병일 회장이 공인과 개인의 영역을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주한인회장협회에서 개인 최병일씨가 아닌 최병일 동남부연합회장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들도 알만한 것이다.

최 회장의 이같은 혼동은 2일 오전 자신의 호텔에서 개최했던 ‘이상한’ 기자회견까지 이어졌다. 동남부한인회연합회의 ‘흑역사’로 기록될 만한 이날 기자회견에는 최 회장을 비롯한 5명의 단체장이 참석해 “편향된 보도를 일삼는 애틀랜타 K를 한인사회에서 퇴출하라”는 성명서를 낭독했다. 애틀랜타 한인사회를 대표한다는 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언론사를 규탄하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이들은 어떤 보도가 문제였는지도 전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최근 최 회장이 애틀랜타에서 주최한 미주한인회장협회 행사 보도와 애틀랜타조지아한인상의(회장 이홍기)의 코리아타운 관련 보도가 불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에 따르면 참석 단체장들은 “애틀랜타K의 지적에 반론 보도 등을 요청한 적이 있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다. 특히 애틀랜타K에 대해 취재금지를 실시하겠다는 발표에 다른 기자가 “소속 단체의 임원들도 이같은 성명서에 동의했느냐”고 질문하자 최 회장이 “내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고 답했다. 기자의 취재결과 이날 참가단체 임원들 가운데 성명서의 존재와 기자회견 개최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최 회장은 올해초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동남부연합회는 순수한 봉사단체인데 왜 비판을 받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기자는 “동남부연합회는 순수한 봉사단체가 아니라 동남부 한인들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공익단체이며 연합회장은 분명한 공인이니까 언론의 비판 영역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을 보면 여전히 자신이 공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또한 필요할 때는 공인이고, 편리한 경우에는 개인 자격이 돼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사에게 재갈을 물리겠다는 속셈이 엿보인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다른 단체장들도 이같은 일에 동조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으면 한다.

끝으로 최병일 회장 등은 성명서에 “애틀랜타K는 광고를 게재하는 협회와 단체에는 우호적인 기사를 쓰고 그렇지 않은 단체는 비협조적인 비판기사를 내는 사이비 언론”이라고 주장했다. 상업언론이기 때문에 “광고주에 우호적”이라는 비판은 감내하겠지만 이들의 주장은 사실관계가 너무 다른 명예훼손성 내용이다.

이날 기자회견 참석단체 가운데 본보와 광고계약을 맺지 않은 곳은 월남참전유공자회 뿐이지만 지금까지 이 단체가 취재를 요청하면 모두 응했고, 비판기사를 게재한 적도 없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지만 대표 한인단체들을 이끈다는 단체장들이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감정에 휩쓸리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상연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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