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광복절, 부끄러운 애틀랜타

애틀랜타한인회 주최로 제74주년 광복절 기념행사가 열린 15일 애틀랜타한인회관. 국민의례에 이어 단상에 오른 김일홍 한인회장의 인사말이 시작됐다. 뷰티서플라이 업종에 종사하는 김회장은 평소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한일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론을 펼쳐왔다.

이날 김회장은 작심한 듯 “반일은 한국은 물론 한인사회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을 이용하는 ‘용일’을 통해 일본을 이기는 ‘극일’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포항제철을 설립하기 위해 일본과 협력한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그 순간, 뒷좌석에 앉아있던 한 한인이 손가락을 머리 주변으로 돌리며 김회장을 마치 ‘미친 사람’으로 표시하는 행동을 했다. 김회장의 연설이 끝난 뒤 박수가 나오긴 했지만 자리로 돌아오는 김회장을 아예 외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김회장은 “행사가 끝난 후 ‘광복절에 박정희 이야기를 하는 의도가 뭐냐’는 거센 항의를 받았다”고 전했다. 광복절 기념식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드러낸 한인사회 대표단체장도 논란의 대상이지만 수준낮은 반응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어 김영준 애틀랜타총영사가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를 대독했다. 다소 긴 연설이었지만 중간 중간 큰 박수가 터져나왔고 해당 연설은 별 잡음없이 끝났다. 하지만 이날 참석자는 아무리 많게 잡아도 150명 수준. 떡국을 준비한 노인회측은 “지난 3.1절 행사때 200명분의 음식을 준비했는데 300명 넘게 와서 이번에는 아예 300명분을 마련했다. 떡국이 남아서 큰 일이다”라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전임 한인회장 가운데 참석한 사람은 김의석 전회장 1명이었고 한인 단체장과 관계자들도 대거 불참해 쓸쓸한 행사였다. 일부 인사는 기자에게 “그런 행사에는 안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얼마전 일본 게이오대학 교수인 대학선배 부부가 애틀랜타를 찾았다. 그들의 연구 주제는 ‘모국 미디어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재외동포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한국 뉴스와 컨텐츠를 접하는 한인들이 현지 정치나 사회문제 보다는 한국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현상을 연구하는 것이다.

광복절 행사장의 모습이 바로 이 연구의 결론을 내려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했다. 모국에 관심을 갖는 것을 넘어서 한국 못지않게 정치적으로 분열된 한인사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현장이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서로를 ‘꼴통’, 또는 ‘문빠’로 부르는 한인들이 주변에 너무나 많다.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라며 행사 마지막에 부른 광복절 노래가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행사가 끝나고 한인회관에 설치됐던 행사용 의자를 치우는 시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삐 빠져나갔고 10여명이 남아 300개 넘는 의자를 정리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상대방을 비방하는데 열을 올리기에 앞서 시민의식부터 먼저 익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상연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