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SK에게 조지아주는 무엇인가?

ITC 패소 이후 조지아 공장 볼모로 대통령 거부권 호소

거부권 가능성 희박해지자 “공장 운영해도 손해…포기”

SK이노베이션이 조지아 공장에 대해 “LG측이 요구하는 합의금을 내느니 차라리 공장을 닫고 (미국에서) 나가는 것이 낫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져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29일자 한국 동아일보는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이 ‘LG에너지솔루션이 제시한 합의금을 낸다면 10년동안 미국 공장을 돌려 버는 돈을 모두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 의장의 발언은 LG에게 합의금을 주느니 3조원 가량을 투자한 조지아 공장을 포기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 의장은 지난 2주간 미국에 머물며 거부권 행사 로비를 벌이다 28일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조지아 공장의 투자 금액과 미국인 고용 규모를 거론하며 ITC 판결을 뒤집어달라고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호소했던 SK측이 이같은 주장까지 하자 일각에서는 “대통령 거부권이 사실상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조지아주 주민들을 위해 선심을 쓰는 것처럼 고용 효과를 홍보하더니,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결국은 돈 때문이었다”고 자백을 한 것 같아 입맛을 씁쓸하게 만드는 발언이다.

한국 외교부의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아 한미 FTA 협상 체결을 주도했던 김 의장은 이어 “ITC는 SK이노베이션에 영업비밀 침해에 대해 방어할 기회를 한 번도 주지 않았다”면서 “증거를 인멸한 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범죄이니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며 LG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며 억울해했다.

미국의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김 의장이 증거인멸이 얼마나 중대한 범죄인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ITC라는 연방 사법기관이 SK이노베이션의 반론을 듣지도 않고 결론을 내렸다는 주장이 다른 사람도 아닌 김 의장에게 나왔다는 것은 더욱 놀랄 일이다. 대기업을 대변하는 자리에 가면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일까?

그는 “이대로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아 ITC의 결정이 시행된다면 10년 동안 부품도 못 가지고 오고, (조지아주의) 26억 달러 짜리 공장을 그대로 놀리라는 것이다. (이런 내용으로는) 이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주를 설득할 수 없다”면서 “조지아주 2공장 건설은 당장 중단하고 철수에 대한 컨설팅을 받아 설비를 헝가리 공장으로 이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구체적인 철수방법까지 설명했다.

현재 LG가 SK측에 요구하는 합의금은 3조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의 말대로 SK 조지아공장에서 벌어들일 돈이 3조원 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매년 10배 가량 커져서 10년후인 2020년에는 215조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전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향후 10년간 ‘고작’ 3조원을 벌어들이려고 공장을 지었다는 주장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조지아 공장을 10년만 돌리려고 지었다는 말인가?

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기업 투자라는 SK이노베이션 조지아 공장은 조지아 주정부의 성과이면서 동시에지역 한인사회의 자랑이었다. 어제까지는 조지아 주민들을 위해 큰 일을 할 것 처럼 자랑하던 한국 기업이 반칙을 하다 적발되고, 일자리를 볼모로 이를 봐 달라고 호소하다 이마저 실패하면서 투자를 포기해버리는 상황이 온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의 이같은 모습으로 인해 한국과 지역 한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파온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도덕적으로 약간의 ‘반칙’을 할 수도 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작은 이점이라도 놓치지 않는 것이 기업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반칙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라면 그에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또한 기업의 도리다. 조지아주 한인들은 대부분 SK가 LG와 합의를 이뤄 조지아 공장을 멋지게 운영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SK의 슬기로운 선택을 기대해 본다.

이상연 대표기자

23일 전면 건물이 거의 완공된 SK배터리 아메리카 조지아공장/전경/© Atlanta K Media 무단전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