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으로 정차시킨 뒤 체포 통보…변호사 “PTSD 탓 체포 거부하다 피살”
조지아주 경찰, 블랙박스-바디캠 동영상 공개…실랑이 벌이다 배에 총쏴
검찰의 잘못된 기소로 플로리다주에서 억울하게 16년간 수감생활을 하다 석방된 한 흑인이 지난 16일 조지아주에서 교통단속 중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가운데 해당 경찰당국이 사건 당시의 순찰차 블랙박스와 바디카메라 동영상을 18일 공개했다.
조지아주 캠든카운티 셰리프국이 유튜브에 공개한 동영상(폭력적인 장면으로 시청자들의 주의가 요구됨)들은 레너드 큐어(53)가 자신의 픽업트럭을 몰고 과속으로 달리다 경찰의 단속을 받고 체포에 저항하다 총에 맞아 숨지는 장면을 생생히 담고 있다.
순찰차 블랙박스 동영상에 따르면 큐어는 은색 닷지 램 트럭을 몰고 시속 100마일 이상의 속도로 달려가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경찰관에게 정지 명령을 받았다. 길가에 차를 세운 큐어에게 순찰차에서 나온 경찰관은 “차에서 나오라(Step out!, Get out!)”고 소리를 질렀다.
경찰관이 트럭 밖으로 나온 큐어를 잡으려고 하자 큐어는 “나는 아무 짓도 안했다”면서 그의 손을 뿌리쳤다. 경찰관은 곧바로 테이저건을 빼들었고 이에 놀란 큐어가 “당신은 도대체 누구냐”고 묻자 경찰관은 “뒤로 물러나지 않으면 테이저건을 맞게된다”고 위협했다.
이에 큐어는 손을 위로 올리고 트럭 뒤로 움직여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경찰관은 무전으로 “용의자가 저항한다”며 지원을 요청했다. 이어 큐어의 두 손을 등 뒤로 잡아당겨 수갑을 채우려 했으며 이에 큐어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체포영장이 있느냐”고 물었다. 경찰관은 이에 대답하지 않고 “손을 뒤로 하지 않으면 테이저건을 맞게 된다”고 재차 경고했다 .
큐어는 “내가 왜 테이저건을 맞아야 하느냐”고 물었고 이에 경찰관은 “당신이 과속과 부주의 운전으로 체포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큐어는 “나는 (부주의)운전을 하지 않았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과속했느냐”고 물었다. 경찰관은 “시속 100마일을 넘었다”고 하자 큐어는 “그러면 티켓을 주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경찰관은 “조지아주에서는 모든 티켓이 형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경찰관은 다시 큐어에게 손을 등 뒤로 내밀라고 명령하면서 “당신은 이제 감옥에 간다”고 통보했다. 이에 큐어는 팔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고 경찰관은 곧바로 테이저건을 발사했다. 테이저건을 맞은 큐어는 잠시 주춤했지만 곧 두 팔을 휘두르며 경찰관 쪽으로 돌진해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관은 곤봉을 꺼내 큐어의 다리를 때리기 시작했고 큐어는 경찰관의 얼굴을 뒤로 밀었다. 경찰관은 이때 총을 꺼내 큐어의 복부에 한발을 발사했고 총을 맞은 큐어는 땅에 쓰러졌다. 큐어가 쓰러지자 경찰관은 “내가 총을 쐈다”고 무전으로 보고했다. 큐어는 총을 맞은 뒤에도 일어서려고 노력하며 “너무 늦었다”고 혼잣말을 했다. 경찰관은 총에 맞은 큐어에게 수갑을 채웠다.
이때 도착한 동료 경찰관은 “그가 총을 가지고 있었나, 아니면 당신과 싸움을 벌였나”라고 물었고 경찰관은 “나와 싸웠다”고 대답했다.
캠든카운티 셰리프국은 이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해당 비디오는 레너드 큐어가 시속 100마일 이상 과속과 난폭 운전을 한 사실을 보여주며 어떻게 치명적인 무력 사용까지 상황이 악화했는지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동영상을 시청한 큐어의 가족과 변호사들은 “총격을 가한 경찰관이 상황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의 형인 마이클 큐어는 “과속 단속용 레이더도 없는 상태에서 해당 경찰관이 어떻게 100마일 이상 과속 사실을 알았는지 공개하지 않았다”면서 “우리는 여전히 레너드가 살아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큐어 가족의 변호는 조지 플로이드와 아머드 아버리 등 인종차별 피해 흑인들을 변호해온 전설적인 변호사 벤자민 크럼프가 맡았다. 크럼프는 “우리는 레너드가 백인 시민이었다면 교통단속에 의해 살해됐을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는다”며 “우리는 정의를 요구하고 있으며 정의는 진실과 투명성 위에 세워질 것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큐어의 어머니 메리 큐어는 “레너드가 (플로리다에 있는) 나를 만나고 조지아 집으로 떠날 때 마다 불안했는데 레너드가 석방된 뒤에도 결코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나는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계속 두려움에 떨었고 언젠가는 경찰이 그를 가두고, 때리거나, 죽이는 날이 올 것임을 알았다”고 말했다.
마이클 큐어는 “경찰관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 자체가 공격적이었으며 레너드와 경찰관의 감정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불행한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레너드 큐어는 지난 2003년 플로리다 대니아 비치에서 발생한 마약상 무장강도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확실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아 2차례의 배심원 평결 후에 유죄 평결을 받은 큐어는 강도 및 다른 중범죄로 전과가 있어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020년 브로워드카운티 검찰청이 기존 유죄평결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에 돌입하면서 큐어의 무죄가 증명됐다. 큐어가 사건 당시 멀리 떨어진 가게의 ATM에서 현금을 인출했다는 증거가 뒤늦게 인정을 받았기 때문. 5명의 법조인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감사위원회는 이같은 사실을 법원에 제출했고 큐어는 그해 12월 무죄 석방 명령을 받게 됐다.
지난 6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큐어의 보상금으로 81만7000달러를 지급했고 이 돈으로 큐어는 애틀랜타 교외에 주택을 마련하고 과속운전으로 적발된 픽업트럭을 구입했다. 억울하게 수감된 흑인들의 무죄 증명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인 ‘이노션 프로젝트’의 세스 밀러 대표는 “큐어는 석방 후 고교 등을 순회하며 흑인 학생들을 교육하는데 정성을 쏟았다”면서 “아들이 무죄라는 것을 알지만 종신형을 선고받는 모습과 뒤늦게 무죄가 선고돼 16년만에 풀려나는 모습을 모두 지켜본 어머니가 결국 아들이 총에 맞아 숨졌다는 소식을 듣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상상하기 조차 힘들다”고 눈물을 흘렸다.
밀러에 따르면 큐어는 사우스 플로리다에 거주하는 어머니를 방문하고 애틀랜타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같은 불행을 당했다. 밀러는 “큐어는 얼마전 집을 구입했고 새로운 인생의 궤적을 시작하려는 상황에서 경찰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크럼프 변호사는 “경찰관이 큐어에게 ‘감옥에 간다’고 말하면서부터 상황이 악화됐다”면서 “경찰관이 큐어가 부당한 수감생활로 갖게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촉발하면서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이상연 대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