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10여년간 ‘악마’같은 범죄…남성들 모집하고 범행 장면 촬영까지
피해여성 스스로 신원 공개하며 “성폭행, 약물투여 등서 여성 보호해야”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범죄가 프랑스는 물론 전세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영국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의 결혼식으로 유명해진 고풍스런 중세 마을 마잔에서 한 남성이 아내를 약물로 기절시킨 뒤 인근 남성들을 모집해 성폭행해왔다는 믿기 힘든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음은 BBC가 전한 현장을 기사로 정리한 것이다.
◇ 법정의 한숨
지난 5일 프랑스 아비뇽 법원의 ‘볼테르 법정’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재판이 돌연 연기됐다는 소식에 방청석에서는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재판장 로저 아라타 판사는 “피고가 아프다”며 이 재판이 상당 기간 지연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 모든 범죄를 주도한 피해자의 전 남편 도미니크 펠리코가 정신적 문제로 출석할 수 없다고 통보한 것이다.
피해자인 지젤 펠리코(72)는 이날 남편의 증언을 듣지 못한다는 소식에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대신 그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자신에게 약을 먹여 의식을 잃게 한 뒤 온라인으로 불러모은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하도록 한 범죄에 대해 낱낱이 밝혔다.
지젤은 “모든 일이 지난 2020년 9월 19일 드러났다”면서 “도미니크가 공공장소에서 여성 3명의 스커트 안을 몰래 촬영하다가 적발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남편은 결혼생활 50년간 단 한번도 외설적인 행동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용서해 주자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그 사건은 악몽의 시작이다”고 말했다. 경찰에 체포된 도미니크의 컴퓨터와 휴대폰에는 지젤이 수십명의 남자에게 성폭행당하는 영상과 함께 딸과 두 며느리가 목욕하거나 자는 모습을 찍은 영상도 담겨있었다.
◇ 악마의 제단에 바쳐진 희생양
지젤은 “남편과 함께 세 자녀를 낳고 손주 7명을 봤는데 그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면서 “나는 악마의 제단에 바쳐진 희생양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성폭행당하는 동안 남편이 주입한 약물에 의식을 잃고 있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전혀 몰랐다고 증언했다. 지젤은 “의식이 돌아오면 전혀 원인을 알 수 없는 멍이나 상처가 몸에 생겨서 의문이 들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남편 도미니크는 적어도 72명의 남자를 모집해 부인 지젤을 최소한 92차례 성폭행했고 성폭행범 가운데는 무려 6차례나 범행을 저지른 남자도 있었다”면서 “도미니크는 남자들에게 향수나 담배 냄새가 나면 아내가 깨어날 수 있다’고 상세한 가이드라인을 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 “약물 취한 줄 몰랐다”는 성폭행범들
성폭행에 가담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된 피고 51명 가운데 절반 이상은 혐의를 인정했지만 대부분 지젤이 약에 취한 줄 몰랐다거나 여자가 동의한 줄 알았다고 빌뻼을 했다. 일부 피고는 “남편이 허락했으니 괜찮은 것 아니냐”는 뻔뻔한 태도를 보여 판사의 분노를 샀다. 하지만 도미니크는 “성폭행에 참여한 남자들 모두 아내가 약에 의식을 잃은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날 법정에 출두한 18명의 피고들은 특수유리로 둘러싸인 구역에 격리돼 앉아 있었고 지젤 펠리코와 그녀의 자녀들은 그들과 단 몇 미터 거리를 두고 앉아 있어야 했다. 지젤의 딸 캐롤린(45)은 감정을 숨기지 않았으며 아버지 도미니크가 자신도 약물에 취하게 했다고 주장하며 성폭행과 약물 문제에 대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증언했다.
◇ 피해자의 고통과 주민들의 분열
마잔의 여성들은 마을이 충격에 휩싸였을 뿐만 아니라, 이번 사건이 새로운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아직도 30명의 용의자가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이웃이 닫힌 문 뒤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 그들의 공포를 대변한다.
루이스 보넷 시장(74)은 마을 주민들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피고인들이 다른 마을 출신이며, 펠리코 부부 역시 외부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일부 주민들과 피해자 가족들의 분노를 샀다. 그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며 사건의 심각성을 축소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 사회에 던져진 물음표
이번 사건은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여성인권 운동가들은 지젤 펠리코를 “엄청난 품위와 용기를 가진 투사”라고 칭하며, 그녀의 용기가 많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번 사건은 남성들의 특정한 행동 패턴을 드러냈으며, 사회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차분하게 진행된 법정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과 마을의 분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지젤 펠리코와 그녀의 가족은 앞으로도 긴 싸움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 마잔은 이제 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약물에 취해 성폭행당하는 이른바 ‘화학적 강제 복종’의 위험성을 상징하는 이름이 됐다.
이상연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