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태프트-가쓰라 합의의 의미

최병효

지난 12일 이재명 후보가 방한중인 미국 연방상원의 존 오소프 의원과의 면담에서 1905년 7월미.일간 “태프트-가쓰라(Taft-Katsura) 협약으로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됐고 전후 일본 대신 한국의 분단과 한국전쟁까지 이어졌다. 그 후 한국은 미국의 지원으로 전쟁을 이기고 경제선진국으로 발전했다. 한미 군사동맹을 넘어 군사 경제 교류 협력을 포함한 포괄적 협력관계가 계속 확대 구축되길 기대한다”고 발언해서 정치권에 논쟁을 일으켰다.

먼저 동아시아에서의 양국의 이익 수호에 관한 태프트와 카쓰라간의 의견교환과 의견 일치를 협약 또는 밀약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다. 두 사람은 회담에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특별한 권리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특별한 권리를 상호 인정한다는 점에 의견 일치를 보았다.

전쟁장관으로서 루즈벨트 대통령의 개인 대표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카츠라 총리를 만난 그가 외교문제에 관해서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할 자격이 있는가의 문제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내각의 주요 일원이고 대통령의 개인 대표로서 그러한 의견을 교환하고 양측 입장을 확인할 권한이 그에게 있었다고 본다. 다만 양측이 일치된 입장을 확인하였지만 이를 문서로 만들어 서명할 권한이 태프트에게는 없었다.

양국 정부의 입장이 확인된 구두 합의를 미-일간 밀약이라고 불러도 이상할 것은 없다고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조약이니 협정이니 하면서 공식적으로 서명된 문서냐 아니냐가 아니다. 상호 이해관계를 협의하고 합의하였으면 구두로 한 것이라고 해도 계약상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국내법이나 국제법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한편이 강대국이고 구두 합의가 그의 이익에 부합하는 면이 크다면 그러한 합의는 지켜질 수 밖에 없다. 조약으로 서명하였다고 하더라도 이에 서명한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어긋나게 되면 그것이 효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운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태프트 장관은 귀국하여 양국간 협의 내용을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Agreed Memorandum of Conversation”(합의된 대화 각서) 이라고 제목을 붙여 보고하였다.

이에 대해 루즈벨트 대통령은 “카츠라 총리와의 귀하의 대담은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옳으며, 카쓰라 총리에게 귀하가 한 모든 말을 내가 확인했다고 귀하가 카츠라 총리에게 말하기 바란다” 고 하였다.

위의 메모랜담이란 용어는 국가간 외교문서에서 쓰는 용어가 아니고 미국 정부 내부 보고서에서 사용하는 문서의 형식이다. (졸저, ‘외교통신문 작성법’, 국립외교원, 2012)

물론 태프트-카쓰라 면담 이후 이를 확인하는 문서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미 국제적 대세가 된 일본의 조선 병합과 이에 대한 미국의 지지 입장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일본에게 공식적으로 고위 수준에서 명확하게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인정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이다. 더 나아가 미국 대통령이 그러한 합의를 확인한다는 사실을 미국이 추후 일본에 (문서 혹은 구두로서?) 통보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로써 “태프트-카쓰라 합의” 의 역사성이 더 크다고 본다.

다만, 이제 막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분이 처음 방한한 초면의 미국의 상원의원에게, 역사적 사실이라고 해도 100여년 전의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한반도의 현 비극적 상황에 기여했다고 지적하는 것이 무슨 외교적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 후보로서는 과거 미국의 대조선 정책의 부당함을 지적하면 미국측이 한국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더욱 지원을 하리라고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민인권단체도 아닌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정부나 의회가 과거 제국주의시대의 역사를 한국측 입장에서 인식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본다.

현재 한일간의 여러 갈등에서 미국이 실질적으로 어느 편을 지지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답이 있다.

오히려 한국의 대권 후보의 인식이 시대착오적이고 오만하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우리측 기대와는 달리 역효과를 가져 오지 않을지 우려된다. 아무리 틀림없는 사실일지라도 이를 말 할 계제와 장소가 있는데 외교 문제에 관한 우리들의 일반적 인식이 아전인수 수준에서 머물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 우리 정치인중 중국이나 러시아 지도자들에게도 그런 관점에서 그들 나라의 과거 잘못을 지적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별로 기억이 안 난다.

우리와 역사인식과 정치체제나 문화가 다른 나라들을 상대하는 외교는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지 국내정치 싸움하듯 기선을 제압한다는 식의 접근은 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주 노르웨이대사, LA총영사 역임, 근저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전주고~서울대 문리대 정치외교학부 졸업>

*외부 기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편집자주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