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주변국의 딜레마

임철순

오늘 우리는 다방면의 위기를 맞고 있다.
외교 혼란, 경기 침체, 노사 갈등, 종북 논쟁 등으로 어느 지점에선가 파국을 맞이할 것 같은 심각한 위기다. 우리나라의 위기는 미국의 자국우선 보호주의와 중국의 공격적 패권경쟁 그리고 일본의 우경화로 더욱 가속, 악화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를 되돌아보면 위기의 본질은 우리나라가 주변국으로서 겪는 딜레마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유와 재산의 보호로부터 기술혁신에 이르기까지 선진국으로부터 학습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성공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의 유교적 제도를 서구적 제도로 바꾸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보릿고개로 배고픈 고통을 겪어야 했던 가난한 나라에서 1인당 국민총생산이 일본에 근접하고 중국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준에 달하는 성공을 이루었다.

바로 그 성공의 원인이 동시에 커다란 위기의 배경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제도와 경제는 선진국의 사상과 과학기술을 모방하고 수입해서 이룬 것이기 때문에, 수입국 내지 주변국으로서의 속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언제든지 사상누각(沙上樓閣)의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은 기초과학이 튼튼하지 못한 주변국의 약점을 잘 보여줬다. 우리가 해방 이후 공업기술을 발전시켜 왔지만 여전히 핵심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은 선진국에 의존하고 있었다. 일본이 반도체 소재의 수출을 규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과학기술 종속의 결과인 것이다.

각국의 기술 수준에 따라서 과학기술이 발전한 중심국과 뒤처진 주변국으로 나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주변국으로서의 과학기술 종속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주변국으로서 열심히 응용기술을 사업화해 반도체 등의 시장에서 가장 높은 시장점유율을 확보했지만, 수출량을 늘리고 시장점유율을 높일수록 점점 더 중심국의 기초·원천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러한 주변국의 딜레마를 이제 현실로 직시하게 되었다.

반도체 소재를 국산화하면 주변국으로서의 기술 종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정부가 반도체 소재 국산화를 위해 재정지원을 하면 반도체 산업은 살릴 수 있겠지만, 그 바탕이 되는 원천기술 및 기초과학의 발전과는 거리가 있다.

1960년대 소련은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군사 및 우주 분야의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에 엄청난 투자를 해서 미국보다 먼저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리는 성공을 거뒀다. 소련은 군사 및 우주 분야의 과학기술을 이끌어가는 중심국이 되었지만, 시장 질서와 민주적 제도의 결핍으로 민간분야 과학기술은 형편없이 뒤처지고, 30년 후 소련연방 전체가 힘없이 붕괴되고 말았다.

주변국에서 벗어나는 것은 일시적 정치구호나 애국심만으로 실현할 수 없다. 우리가 기초과학과 첨단기술을 이끌어가는 중심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구호나 애국심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국민과 기업이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효율적인 질서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제도와 질서는 서구에서 수입한 것으로 그동안 기술과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수입국 내지 주변국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효율적인 질서와 제도는 물론 과학기술의 독립도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선진국 내지 중심국으로부터 사상과 제도를 수입하고 모방해서 발전했지만 주변국으로서의 한계와 극단주의에 빠져 실패하고 쇠락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수입해서 초기에 부국강병을 이룩했지만 중반부터 경직된 성리학과 사농공상의 비생산적인 질서로 과학기술은 정체되고 백성들은 지배층의 착취와 가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조선은 중국에서 유교를 수입했지만 중국보다 더 유교적인 극단주의에 빠져서 멸망을 자초했다. 일제치하 수입된 공산주의도 그렇다. 공산주의를 수출한 유럽에서는 공산주의가 붕괴되었지만  북한에는 가장 극단적 형태의 공산주의 정권이 살아 있고 남한에도 공산주의 이상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16.4% 인상하고 대기업을 적폐 및 규제 대상으로 보고 추진하는 경제정책도 기계적 평등을 이상으로 생각하는 주변국에서 나타나는 극단적 형태의 평등주의다. 선진국 과학자들과 기업들이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기계적 평등이 실현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혁신하고 사업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임금평등 그리고 노동시간에 관한 비현실적 규제를 강화하는 주변국의 정책을 채택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주변국으로서의 기술종속을 극복하려고 하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정치적인 구호로만 가능하다.

과학자들과 기업들에 자유를 보장하는 대신 각종 규제와 채찍질만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선례는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상과 제도 면에서 주변국으로서의 행태를 극복할 때에만 비로소 기술종속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임철순/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한국일보 주필, 편집국장 역임/新刊:”손들지 않는 기자들”/近著:”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 “노래도 늙는구나”>

*외부 기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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