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그는 누구일까?

천양곡 정신과 의사, 시카고

 

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따금 환자한테 듣는 질문이다. 자신의 삶이 그 사람 때문에  불행해졌다는 것이다. 그 사람 중에는 부모, 배우자, 친구, 친지도 있다. 거친 세상 풍파 속에 버티고 살아가며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심리적 안정을 얻으려는  방법의 하나로 타인을 비난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정신과적으로 부정(Denial), 투사(Projection), 합리화가 뒤섞인 복잡한 방어기전의 사용이며일반적으로 의심불만오만에 가득 차있는 이기심의 표상으로 표현된다이런 사람 대부분은 자아성찰자아발견감정조율에 문제가 많아 인간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소외감과 외로움에 묻혀 자기만의 공간에서 쓸쓸이 살아가기 마련이다.

또한 그런 사람은 물어보는 사람에 대한 애증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그 사람과 다르다는 심리상태를 은근히 내 비치는 경향도 있다. 

환자가 찾아오면 내과의사는 먼저 혈압맥박온도를 체크한 후 식 생활과  운동여부에 대해 묻는다. 반면 정신과의사는 환자의 얼굴표정을 살핀 후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적, 정신적, 심리적 상태를 깊이 관찰한다. 

이것은 정신과의사들이 교육과 경험을 통해 익힌 습관이다, 20세기 중엽 까지도 진짜 정신과의사가 되려면 이름난 정신과의사한테 자신이 누구 인가를 알아보기 위한 몇 년 동안의 자가정신분석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득한 결론은 아무리 고명한 정신분석 정신과 의사라도 일반 사람이나 환자의 내면을 꿰뚫어 보기란 거의 불가능 하다는 깨달음이었다. 물 열 길 속은 알아도 사람 마음은 한 치도 알 수 없다는 속담이 맞는 말이다.

오래 전 독립기념일 주간에 등이 꾸부정한 노인남자가 오피스로 찾아왔다나이 들은 아날로그 세대의 방문은 이제 매우 드물었기에 우선 반가움이 앞섰다

머리가 거의 순백인 나를 보더니 마음이 놓이는지 언제 어디서 미국으로 왔느냐고 물었다거의 반세기 전 한국에서 건너 왔다고 하니 반색을 하며 자기가 한국전쟁에서 싸웠던 군인이라 했다.  환자기록란에 적힌 출생연도를 보니 당시 도저히 군인이 될 수 없는 나이였다.

그러나 일단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다음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여기 저기 아파요소화도 안 되고잠도 잘 들지 못하고 등도 많이 아파요그렇다고 큰 병에 걸렸다는 생각은 없어요.” 

방금 전 일상적 대화를 할 때는 명랑하고 활기가 있었는데 증상들을 말 할 때는 병든 노인의 모습이었다. “내과의사 선생님은 뭐라 하는데요?”  

노인은 옆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마 정신과의사가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내가  물어 보기도 전에 노인은 눈치를 챘는지  아내와 자식들이 모두 잘해주는데  왜 병이 났는지 모르겠네요.”

여러 번에 걸친 내과의사의 진찰많은 검사 소견에 별 이 상이 없는데도 계속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면 정신과에서는 신체형장애를 의심한다.환자가 신체질환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상태다

심적 갈등불만분노스트레스가  발병원인으로 대부분의 경우 우울불안을 동반할 때가 흔하며 대표적 신체형장애 질환들은 다음과 같다.

갑자기 팔 다리가 마비되고말도 잘 못하고눈도 잘 보이지 않아 흐릿흐릿하고귀가 잘 들리지도 않는 등 신경감각과 신경운동 기능의 저하를 나타내는 전환장애(Conversion Disorder- 예전에는 히스테리아라 불렀음), 사소한 신체증상들이 빈번히 계속되면 큰 병이 걸렸다고 걱정하는 건강염려증(Hypochondriasis), 정상적 외모의 소유자가 신체에 조그만 흠이 발견되거나 상처가 생기면 세상이 무너진 듯 자신의 몸이 달라지고 추한 모습으로 변했다는 신체이형장애( Body Dysmorphic Disorder 예전에는 뮌하우젠 증후군), 그리고 가장성장애(Factitious Disorder)와 꾀병(Malingering) 등을 들 수 있다.가장성장애와 꾀병은 자신 스스로가 의식적으로 증상을 만들어 내지만 자신이 병이 없음을 알고 있다꾀병은 금전적 보상을 원하거나 형벌을 피하고 어떤 의무와 칙임에서 벗어나려는 동기가 확실하자만가장성장애는 단지 환자의 역할을 함으로서 타인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자하는 심리적 보상의 동기를 보인다

나머지 3가지 병은 고의적으로 증상을 만들어 내지 않고 정말로 자신이 아픈 것으로 믿는 질환이다. 

노인은 어렸을 때 부모와 행복한 시간을 가져 보지 못했다가족부양을 위해 긴 시간을 일해야 했던 아버지는 집에 오면 맥주 몇 병 마시고카우치에서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들었다어머니는 그런 아버지가 불만인 듯 아이들을 잘 돌봐주지 안했다어쩌다 아버지에게 말을 걸으면 술취한 아버지는 고함을 지르며 밀쳐버리곤 했다.

그는 아버지가 무섭고 미웠다나중에 커서 거칠고 힘센 남자가 되어 아버지를 이기고 싶었다그래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해병대에 입대했다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역만리에서 공산군과 싸웠고제대 후에는 가정과 직장에서 능력 있고 건강한 힘센 남자로 살아 왔다

그러다 70 대 초 감기가 폐렴으로 번져 잠시 병원 신세를 졌다이제 폐렴은 다 나았는데 계속 머리다리등이 아프고 소화가 안된다는 하소연이었다. 

노인은 자신이 고의적으로 신체적 아픔을 지어낸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아픈 사람으로 보였다그러나 한국전쟁 병사였다는 말은 거짓말 같았다.  

왜 그랬을까신체화장애 환자를 이해하려면 무의식의 존재를 전제로 한 정신역동적 사고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무의식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이고 꿈틀거리는 역동 상태다.. 

인류가 살아온 문화와 삶의 발자취가 역사라면 정신분석은 한 개인의 삶에 대한 발자취의 추구이다치유자는 환자의 어렸을 적 부모와의 관계를 포함한 유년기의 성장과정과 보육과정을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

물론 나 자신도 잘 모르는데 타인을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치유자는 항상 상상력추상력을 동원할 수 있는 소설가가 되어야 한다.

노인은 아마 폐렴에 걸린 것을 자신이 약한 남자가 되었다는 슬픔부정분노회한 등을 무의식 속에 가둬 놓았을 것이다이제 권위의 상징인 정신과의사를 만나자 어렸을 적 아버지 영상이 떠올라 자신이 힘센 남자라는 무의식 소망이 한국전 군인이었다는 거짓말로 둔갑하여 의식 밖으로 밀어 냈을 가능성도 있다.

거짓말거짓 행위거짓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을 무조건 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할 때가 꽤 있었고 지금도 있기 때문이다. 120여 년 전 프로이트가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며 정신분석학 이론의 초석을 세웠고수많은 소설가시인들이 그들을 창작의 대상으로 삼고 있고진화생물학자는 약육강식의 사활전쟁에 필요한 생존유전자를 찾기 위한 소재로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신경과 전문의/일리노이 주립정신병원 Chief Psychiatrist, 시카고大 의대  정신과 임상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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