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어넌 음모론] ⑤가짜뉴스 공격하면 의심하라

유튜브-SNS서 독버섯처럼 피어난 ‘유사 매체’들이 음모론 확산 주범

“거짓말하는 주류언론 대안” 주장…사실은 트럼프 미끼 구독자 ‘낚시’

“‘미끼’ 사라지면 당분간 진정” 전망…극우-인종주의는 계속 이어질듯

대표적인 친 트럼프 매체이자 트럼프 본인이 “폭스뉴스를 끊고 옮겨가라”고 극찬했던 뉴스맥스(Newsmax)가 지난달 20일 언론으로서는 ‘치욕적인’ 방송을 내보냈다.

뉴스맥스는 이날 투표기기 제조업체인 스마트매틱과 도미니언사에 대해 “대선 이후 여러 게스트가 방송에 나와 투표기기를 조작해 부정선거가 이뤄졌다고 주장했지만 우리는 이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게스트 뿐만 아니라 방송사 소속 앵커들도 이같은 주장을 되풀이했지만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다. 뉴스맥스는 이날 여러차례의 방송을 통해 한달넘게 사실로 보도해왔던 투표기기를 통한 결과 조작과 베네수엘라 차베스 배후설 등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모두 증거가 없는 주장이었다”고 자백했다.

워싱턴주 올림피아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 시위에 참가한 여성이 극우 음모론 큐어넌(QAnon)을 뜻하는 큐(Q)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다. 올림피아=AP연합뉴스

 

뉴스맥스가 이같은 ‘회심’ 방송을 하게 된 이유는 투표기기 업체들이 허위보도에 대해 거액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법률 통지서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취재 없이 음모론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고, 심지어 음모론자들을 방송에 출연시켜 허위사실을 내보냈기 때문에 법정에 가면 패소할 것이 뻔했다는 게 법률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 “기존 언론 절대 믿지말라”며 음모론만 확대재생산

뉴스맥스와 같은 대안매체들은 줄곧 “기존 언론사들의 보도는 모두 가짜뉴스여서 절대 믿으면 안된다”고 주장하며 주류 미디어에서 다루지 않는 ‘색다른 내용’을 전달해왔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이 대부분 취재의 뒷받침 없이 음모론 사이트나 소셜미디어, 유튜브 등에서 여과없이 형성된 내용을 그럴듯하게 포장해낸 ‘진짜’ 가짜뉴스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투표기기 조작에 대해 조금이라도 심층적인 자체 취재를 했다면 기기 제조사가 “허위”라고 주장한 내용 가운데 하나라도 반박을 했을 것이라는 ‘조롱’을 받고 있다.

반대로 이들이 가짜뉴스라고 줄기차게 비판해온 뉴욕타임스 등은 트럼프 등 역대 대통령 후보들과 리버티대학 등 대형 교육기관, 통일교 등 종교기관들에게 끊임없이 각종 고소를 당해왔지만 “충분한 취재를 거쳤고, 진실은 법정에서 드러날 것”이라며 “언론의 자유를 압박하는 각종 위협에 정면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친 민주당 성향을 드러내고 진보적인 입장에 서있어 ‘편향된 시각’이라는 비판은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주류 언론 전체를 ‘가짜뉴스’로 매도하는 것은 더욱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킨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의 성향은 다른 ‘팬덤’과 마찬가지여서 자신들의 입맞에 맞는 콘텐츠만을 소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대선 직후 폭스뉴스에 실망한 트럼프가 ‘이제부터 뉴스맥스를 봐야 한다”는 트윗을 올리자 곧장 뉴스맥스로 몰려들었다. 이후 뉴스맥스는 프라임타임 시청자가 100만명에 이르렀고 앱 다운로드도 400만회를 넘어서는 등 ‘트럼프 호황’을 누려왔다.

사과 방송을 하는 뉴스맥스/ Newsmax 캡처

 

◇ 극성 팬의 환호에 한인 유사매체도 ‘트럼프 팔이’

대선 이후 이러한 트럼프 효과는 한인 유튜버들과 소셜미디어 콘텐츠 제작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유튜브 상에는 대선 이후 갑자기 미국 선거조작 주장을 제기하는 한국어 채널이 급격히 증가했다. 한 한인 이용자는 “한인 유튜버들이 언제부터 미국 정치에 이렇게 큰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라면서 “평소에는 비정치적인 내용을 방송했거나 중도적인 입장을 보였던 채널들이 갑자기 선거조작을 규탄하고 트럼프 찬양에 나서는 모습은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라고 전했다.

실제 이같은 주장을 제기하는 유튜브 채널은 미국 대선 이후 이용자와 조회수가 급속히 늘었고,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같은 성향의 한인들에게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반대로 트럼프의 선거불복과 실패한 선거소송 등을 비판하는 동영상에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댓글 폭탄이 이어져 ‘과격한 팬그룹’이 전체 여론을 호도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전파하는 콘텐츠들이 대부분 큐어넌 음모론자들이 제기한 의혹들을 친트럼프 유사매체를 인용해 확대 재생산하거나, ‘밑도 끝도’ 없는 희망적 예측과 전망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일단 한 유튜버가 음모론 하나를 제기하면 댓글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갖가지 허위 주장과 근거없는 예측들이 꼬리를 물며 “트럼프는 결국 대통령에 취임하며 악의 세력은 패퇴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지아주 메이컨의 한 트럭에 ‘큐어넌’ 팻말이 세워져 있다. [메이컨=로이터 연합뉴스]

◇ 팬덤과 개인숭배에 근거하면 결국 몰락의 길

투표기기를 이용한 선거조작을 영어 매체보다도 끈질기게 전파했던 한인 유사매체들은 공교롭게도 투표기기 업체의 법률 대응 소식이 전해진 이후 관련 주장을 일절 자제하고 있다. 또한 지난 6일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테러 사태 이후 트럼프가 ‘평화적인 정권이양’을 발표하자 정신적 충격을 받은 탓인지 콘텐츠 게재 빈도가 급속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동안 트럼프 ‘미끼’에 낚여 해당 유사 매체를 방문해왔던 이용자들이 의사당 난입 이후 급속히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뉴스맥스의 경우 한때 100만명을 넘었던 프라임타임 시청자가 40만명대로 급감했고, 한인 유사매체 가운데도 조회수가 절반 이상 줄어든 곳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추세는 큐어넌 음모론의 미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분석기사에서 “바이든의 승리가 최종적으로 확정되면서 큐어넌 음모론자들이 갈 길을 잃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메시아로 믿었던 트럼프가 실패하면서 큐어넌의 기반은 점차 약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빅테크 기업들이 큐어넌에 대한 초강력 제재에 나서면서 음모론이 발붙일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큐어넌 자체는 약화될 수 있지만 극우-백인우월주의에 기반한 음모론은 다른 모습으로 여전히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6일 의사당 난입사태 이후 전문가들의 진단을 통해 “트럼프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 그를 중심으로 한 음모론이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무엇보다 큐어넌을 만들어낸 미국사회의 잘못된 토양이 앞으로도 다른 얼굴의 음모론을 계속 키워낼 것”이라고 전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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