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역사칼럼] 5. 식민지 분할: 장물 나눠갖기?

엄연히 주인이 있는 재산을 별로 상관없는 남들이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나눠 갖는 경우가 이 세상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흔히 도둑들이 그렇게 한다. 남의 물건을 훔쳐 놓고 서로 나눠 가지려고 으르렁대다가 크게 다투거나, 심지어 자기들끼리 치고받다가 살인까지 저지르는 도둑들도 있다. 나라 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힘이 약해 비실거리는 나라의 땅을 힘센 나라들이 일방적으로 나눠 통치하는 예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한반도가 두 동강이 나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도 그것이고, 예전의 독일도 그랬었다. 옛날 같으면 그냥 꿀꺽하고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겠지만, 현대에 와서는 남의 이목이 있는지라 그렇게 하지 못할 뿐이다. 5백년 전에는 심지어 세계를 둘로 쪼개 나누어 가지려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맺은 조약이 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그것인데, 이 조약의 결과로 지금 중남미 대륙에서 브라질만 특이하게 포르투갈어를 쓰고, 그 이외의 나라에는 대개 스페인어를 쓰게 되었다.

옛날부터 유럽 여러 나라는 향신료를 많이 썼다. 향신료를 음식에 넣으면 엄청나게 음식 맛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향신료는 주로 인도지방에서만 주로 생산된다. 그런데 15세기 들어 중동지방을 오스만제국이 차지한 이후에는 향신료를 수입하는 데에 문제가 생겼다. 오스만제국이 인도에서 유럽으로 오는 길목인 중동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인도에서 오는 향신료를 독점하여 중간에서 큰 이윤을 남기면서 말할 수 없이 비싼 값에 유럽에 팔았기에 유럽 나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값에 향신료를 살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스페인과 포르투갈과 같은 나라들은 중동을 거치지 않고 인도로 갈 수 있는 길이 없는가를 열심히 찾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두 나라에 항해술이 특히 발달했었다.

인도로 바로 가는 항로만 발견하면 싼값에 향신료를 손에 넣을 수 있고, 또한 이렇게 하면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유럽 전역에 팔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 이유로 포르투갈은 일찍이 아프리카 대륙을 남쪽으로 돌아 동쪽으로 가면 인도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고 그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었다. 이에 선수를 빼앗긴 스페인이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가면 인도에 다다를 수 있다고 우기면서 항해를 하겠다는 주장에 한 번 도박을 걸어 보게 된 것이다. 그 결과로 아메리카 대륙에 콜럼버스가 최초로 도착하게 되고, 포르투갈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모양새가 되었다.

콜럼버스의 상륙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고 돌아오자, 스페인은 새로이 탐험하는 땅을 몽땅 자기네만 독차지하고 싶어서 교황에게 그렇게 인정해 달라고 애걸복걸하게 되었다. 그 시대의 교황은 영향력이 막강했으므로 교황이 결정하면 그대로 진행되는 것이 관례였다. 이보다 먼저 아프리카 남쪽으로 돌아가는 항로를 개발하면서 포르투갈도 비슷한 조건을 교황에게 요구하여 이미 승인을 받아 놓은 상태였다. 이에 교황도 양쪽 중 어느 한쪽만 편들기 곤란하자 대서양에 남북으로 경계선을 그어 그 동쪽은 포르투갈이, 그 서쪽은 스페인이 차지하는 것으로 중재했다.

그 경계선에 대해 양쪽이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다가, 1492년 드디어 두 나라 사이에 조약이 체결되고 경계선을 정했는데, 그 경계선이 공교롭게 지금의 브라질 동쪽 끄트머리를 지나도록 정해졌다. 이런 연유로 포르투갈은 남미대륙의 한쪽 구석에 아주 작은 식민지를 갖게 되었다. 그 뒤 다른 유럽국가들이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면서 두 나라 사이의 조약도 흐지부지되고, 포르투갈도 식민지 땅의 판도를 마음대로 넓히다가 지금의 브라질 영토만큼 늘리게 되었다. 남미에서 브라질만 특이하게 포르투갈어를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기네 땅을 남들이 멋대로 나눠 갖는 데도 아무 말 못하고 당하기만 해야 했던 원주민은 무슨 신세일까? 낙후되어 힘이 없으면 이렇게 처량한 신세가 된다. 개인사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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