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어렵게 만들어 투표율 낮춰놓고 예산 아깝다?”
야당 우세 전망…예산 줄이고 아예 선거홍보도 안해
중앙선관위 재외선거관 파견에 예산 대부분 사용해
제22대 한국 국회의원선거 재외선거 유권자 등록이 오는 12일 시작된다. 갈수록 문제가 깊어지는 재외선거의 현주소를 3회에 걸쳐 시리즈로 점검한다. /편집자주
시리즈 순서
1. 투표 어렵게 해놓고 참여율 낮다고 ‘타박’
2. 재외선거관엔 수백억원…참관인 시급은 5불
3. 투표 인프라부터 홍보 전략까지 ‘무대책’
지난 2020년 제21대 한국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한 재외국민 유권자는 총 4만858명으로 등록 유권자 17만1959명의 23.8%에 불과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역대 가장 낮은 재외선거 투표율을 기록한 것. 당시 중앙선관위는 팬데믹을 이유로 36개 재외 공관에 대한 업무를 전격 중단해 8만7269명의 유권자는 투표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당시 재외선거 예산은 46억7100만원으로 이전 20대 총선의 82억8400만원보다 절반 가량 줄어든 수준이었다. 예산이 이처럼 줄어든데 대해 중앙선관위측은 “선거관리의 효율화를 위한 결정으로 현재의 재외선거 제도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투표 참여가 저조한 상황에서 재외선거에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제22대 총선의 재외선거 예산 총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세계 22명의 재외선거관 파견에 19억8700만원을 배정했다. 재외선거관 1인당 1억원 가까운 예산이 드는 셈이다. 재외선거 예산은 재외선거관 외에도 현지의 실무관 채용과 재외선관위 구성, 홍보 등에 사용되며 애틀랜타에도 김낙현 재외선거관이 지난 5월 부임했다.
◇ 투표 어렵게 해놓고 재외국민 탓만
실제 재외선거의 투표참여는 한국에 비해 크게 저조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 정부가 추정하는 전세계 재외 유권자 숫자는 220만여명이지만 역대 가장 투표율이 높았다는 지난 제19대 대통령선거 투표수가 22만1981명에 불과했다. 총선의 경우 21대 총선이 가장 낮았지만 20대 총선 6만3797명, 19대 총선 5만6456명도 ‘형편 없는’ 수준이었다.
투표율이 이처럼 낮은데 대해 재외동포들은 물론 한국 정계에서도 “광범위한 지역에 산재해 거주하는 재외국민들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재외공관이나 극히 소수인 투표소에서만 투표가 가능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편 및 인터넷 투표 도입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정파간 이해관계로 이를 가로막고 있으면서 투표율 저조를 재외국민들의 무관심 탓인양 몰아가고 있다는 불만도 높다.
특히 지난달 김낙현 애틀랜타 재외선거관은 언론 간담회를 갖고 “올해는 홍보예산이 전혀 없어 언론사에 광고를 집행하지 못하니 양해해달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소셜미디어나 대면 홍보를 한다는 계획도 없는 상황이어서 사실 투표참여 홍보는 포기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에 대해 한국 정계는 물론 한인사회 일각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워낙 낮고 재외선거 득표율도 저조하기 때문에 아예 재외국민들이 투표 참여를 막으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 대선 재외국민 투표에서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59.8%를 득표해 36.2%에 그친 윤석열 후보를 압도했다.
◇ 홍보는 포기하고 재외선거관에 예산 낭비
재외선거 예산이 줄어들면서 한인사회에서는 “온라인 유권자 등록과 인터넷 투표 도입 등 선거제도 개정은 아예 포기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그나마 재외선거 예산의 대부분은 재외공관에 파견되는 재외선거관 파견에 사용되고 있다.
재외선거 도입 초기 최대 55명까지 파견되던 재외선거관은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20명 수준으로 줄었다. 선관위는”‘재외 공관의 투표율 제고를 위해 장·단기 관리관을 해외에 파견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실제 관리관의 해외 파견이 투표율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 20대 대선 당시 재외선거관이 파견된 22개 공관의 유권자 등록률은 4.5%로 전체 등록률보다 1.6% 높은 수준이었다. 특히 재외선거관이 파견되지 않은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관은 각각 8.9%와 6.7%의 등록률을 보였다. 재외선거 초기부터 내내 선거관이 파견됐던 애틀랜타총영사관의 지난 대선 등록률도 4.7%에 불과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현지 사정도 모르는 재외선거관을 단기간 파견하면서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김낙현 애틀랜타 재외선거관은 지난 9월 동남부한인회연합회 정기총회에참석해 재외선거를 홍보했지만 참석자 대부분이 미국 시민권자였고 그의 강연에 뒤이어 미 시민권 관련 책자 홍보행사가 열리는 촌극이 연출됐다.
또한 임용 비리 등으로 질타를 받고 있는 중앙선관위가 이번 재외선거관을 파견하면서 주재국 어학성적을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여당인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으로부터 주의를 받기도 했다.
홍보방법도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지역 한인신문에 형식적인 선거광고를 게재하는 것 외에 젊은 층을 위한 소셜미디어(SNS) 홍보나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선거 소개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홍기 애틀랜타한인회장은 “재외선거 투표 참여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적극 도울 생각이지만 아직 총영사관이나 선관위의 요청을 받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상연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