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연의 짧은 생각] 한인업주 피살 사건 취재 일지

지난 15일 애틀랜타 인근 이스트포인트의 한 뷰티서플라이에서 한인 여성 업주가 강도의 총격에 희생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사건은 이날 저녁 7시경 지역 방송인 폭스 5 애틀랜타에 짤막하게 보도되면서 처음 알려졌습니다. 첫 기사에는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사실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상태는 알 수 없다는 내용만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인 1명이 “구글 업소 페이지에 나온 매장 내부 사진을 보니 디스플레이가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처럼 보인다”고 제보를 해왔습니다. 곧바로 전화 취재에 돌입했고 여러 통의 전화를 돌린 끝에 한 뷰티협회 관계자로부터 피해자가 한인이라는 사실은 물론 이름까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7시 30분경 피해자와 친분이 깊은 다른 관계자가 “가족들로부터 병원 이송 직후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해 왔습니다. 이후 추가 확인을 거쳐 첫 기사를 송고한 것이 7시 50분입니다. 첫 기사 송고 후에도 가족들의 연락처와 수사 상황을 알기 위한 추가 취재를 했는데 8시25분경 폭스 5 애틀랜타에도 피해자의 이름과 사망 소식이 보도됐습니다.

다음날인 16일에는 사건 현장 취재를 위해 나섰고 수소문 끝에 피해자 가족의 휴대폰 번호를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뉴스 채널인 YTN에서 카카오톡으로 “애틀랜타 시간으로 오후 6시와 8시에 생방송에 출연해 사건을 보도해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현장으로 이동하면서 차량 안에서 피해자의 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다행히 전화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인터뷰를 요청하자 “20분 후에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녀의 전화는 1시간 이상 운전해 현장에 도착한 후에도 걸려오지 않았고, 대신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방문한 지역 주민들과 인터뷰를 하는 한편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현장에서는 채널 46번 등 주류 방송사 기자들이 차량 안에서 이른바 ‘뻗치기’를 하며 취재거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인 언론사 기자들이 다녀간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날 오후 1시까지 애틀랜타 K를 제외한 한인 언론은 이번 사건 관련 기사를 전혀 게재하지 않았습니다.

마침 어린 소녀일 때부터 30년간 이 가게의 단골이라는 한 여성 고객을 만나 그녀가 회고하는 고인의 이야기를 동영상으로 녹화했습니다. 이 동영상을 딸에게 전송하자 그녀에게서 “너무 고맙다”는 메시지와 함께 곧이어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렇게 성사된 인터뷰는 20분 가량 이어졌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가슴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전 삼풍백화점 참사나 대구 지하철 사건 때는 사건 취재에만 골몰해 눈물은 커녕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침착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나이를 먹고 아이들도 키워봐서 그런지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샘부터 자극됩니다. 지난번 이태원 참사 때 아들을 잃은 애틀랜타 아버지와 인터뷰하면서도 대화를 자주 중단해야 했습니다.

바쁘게 현장 취재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 YTN에 2차례 출연한 뒤 허둥지둥 저녁식사를 마치고 기사 작성에 들어갔습니다. 기사를 쓰면서 머리에 맴도는 생각은 “이민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땅에서 헌신하다 숨진 한인 여성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같은 시대를 사는 한인 독자들에게 알려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사 작성과 송고를 모두 마치니 자정이 넘어섰지만 몸은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아마 이렇게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애틀랜타 스파 총격사건 때도 그랬지만 저널리스트로서 사건을 취재하고 기록할 때 사명감 같은 것을 느낍니다. 흘러가면 잊혀져 버리는 시간 속에서 역사에 남을 ‘저널’을 기록하는 일이 아마 숙명인 것 같기도 합니다. 미국 대학 졸업생들이 가장 후회하는 전공이 저널리즘(본보 기사 링크)이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어떤 분이 “어떻게 피해자나 가족들과의 인터뷰를 그렇게 쉽게 성사시키느냐”고 물으시더군요 하지만 절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동안의 노하우도 있지만 시간과 발품을 투자해야 얻을 수 있는 성과입니다. “동네 언론이 뭐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작은 사명’은 없습니다.

한 한인 언론은 애틀랜타 K가 취재한 내용을 자사 기사에 슬쩍 포함시키고는 카톡방에 퍼나르는 일까지 합니다. 다른 언론은 주류 방송사가 전하는 주민들의 추모 만을 번역해서 전달합니다. 한인이 희생됐는데 말입니다. 또 다른 언론은 제공한 사람의 크레딧도 달지 않고 고인의 사진을 사용합니다. 이런 사건을 혼자 취재하면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들에게 제대로 된 취재와 사명감은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왜 언론을 하고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대표기자

3 thoughts on “[이상연의 짧은 생각] 한인업주 피살 사건 취재 일지

  1. 너무나 공감되는 글입니다.
    상대방의 슬픔을 깊이 이해하고 진심어린 위로를 하신 요즘시대에 보기 힘든 기자님이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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