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12일(현지시간) “미국은 북한 핵 문제에 손을 놓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미국만 바라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전 총리는 이날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열린 김대중 기념 연례 강좌 초청 연사로 한 강연에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과 관계를 어떻게 가져갔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 전 총리는 “북한이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핵무장 의지를 드러낸 1차 북한 핵 위기 이후 30년이 흘렀다”면서 그동안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은 미국이 주도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북한과 비핵화 협상에 실패한 원인으로 ▲ 북한 체제의 생존 욕구 무시 ▲북한이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곧 붕괴할 것이라고 오판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등 압박 효과 과신 ▲정권에 따라 북한 정책이 오락가락하며 일관성 상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 하다가 안 되면 협상을 깨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함정에 빠진 것 등을 꼽았다.
그는 대북 제재와 관련해서는 “제재 일변도로 가는 것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고 역효과를 낳고 있다”면서 “당근과 채찍을 병행해 리드레싱을 생각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지금처럼 북한이 고립 속에서 점점 위험한 생각에 빠지는 것보다는 고립을 끝내고 햇볕 아래로 다시 나오게 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것의 시작은 대화의 재개에 있다”면서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어떤 접근점이 발견될 수 있다고 믿는다. 대화가 모든 것의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는 “반대정당의 정책을 받아들이고 국가를 통일의 길에 올려놓은 독일 헬무트 콜 총리와 같은 정치가가 한국의 보수정당에서도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패전과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룬 독일은 정책 계승에서 달랐다”면서 “서독에서는 사민당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기민당 콜 총리가 이어받았지만, 한국에서는 민주당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포용 정책을 보수 정부들이 뒤집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북정책이 일관되게 계속되도록 하는 일은 한국의 큰 과제임이 틀림없다”면서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독일의 경우를 배우자고 권고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과 아시아는 역사 청산에서 달랐다”면서 “전범국이자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가해의 역사를 지속해 사과했다. 1970년 비 오는 날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학살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은 브란트의 모습은 유럽의 피해국뿐만 아니라 세계 인류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다”고 말했다.
반면에,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전범국이자 패전국이었다면서, 일본은 사과했으나 지속적이지 않았고,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를 각료들까지 참배해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일본 정치인 가운데 브란트 같은 지도자가 나와 노벨평화상을 받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는 24일 귀국 이후 계획과 관련해서는 “내년 총선 출마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면서 “현 정부에 한반도 평화의 최대 이해 당사자답게 행동하라고, 지금도 충고와 제안을 하고 있고, 귀국하면 지난 1년 동안 미국에서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제가 할 바를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지난 1년 동안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체류한 이 전 총리는 7일 독일 튀빙겐대 강연을 시작으로 이날 베를린자유대에 이어 16일 체코 프라하 카를대에서 강연을 한 후 24일 서울로 귀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