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13년 만에 1300원 돌파

위기수준 넘어서…”뉴노멀 될수도, 상단 1,350원선”

“한국 경제 체력 비해 지나치게 절하”…안정 예상도

원/달러 환율 1,300원 돌파…코스피는 오름세
원/달러 환율 1,300원 돌파…코스피는 오름세

23일 원/달러 환율이 경제 위기 수준에서나 이르렀던 1300원을 돌파해 마감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고물가와 미국의 고강도 긴축정책,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환율 변동성 확대가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본다.

원/달러 환율 1300원대가 뉴노멀이라는 평가까지 나왔고 일각에선 환율이 단기적으로 달러당 1,350원선까지 추가 상승할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유럽의 긴축 예고와 물가 안정화 조짐 등 대외 금융환경과 한국경제의 기초여건을 고려할 때 최근과 같은 고환율은 오래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글로벌 물가 상승세 지속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가파른 긴축 기조,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가 달러화 강세에 기본적 배경이 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는 것도 원/달러 환율 급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전날 연준의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을 인정하는 발언을 해 금융시장에는 위험회피 심리가 더욱 강해졌다.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 가능성에 따른 외국인 자금 이탈도 원화 약세를 가속하는 요인이다.

시장에선 연준이 7월에도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금리인상)을 시사함에 따라 조만간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이 가시화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는다.

과거엔 한미 금리 역전 시기에도 외환 스와프포인트가 강세를 띠면서 외국인 채권 자금이 유입됐지만, 최근 여건은 이전과 달리 외국인 자금 유입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 1300원 상회, 외환위기 등 3차례…엔화보단 약세폭 작아

역대로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300원 위로 치솟았던 사례는 세 차례에 불과하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환율이 2000원선 가까이 치솟은 바 있고, 1998년까지 장기간 환율이 1300원대 이상에서 머물렀다.

이어 2001∼2002년 일본의 제로금리 정책에 따른 엔저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한동안 달러당 1300원대에 머물렀다.

이후 2000년대 중후반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900원대까지 떨어졌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으로 2008∼2009년 다시 1300원 위로 치솟은 바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 수준이 각종 경제 위기 시기의 영역대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올해들어 원화 가치 하락 폭은 달러 강세 정도보다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올해 들어 지난해 말보다 9.5% 올랐지만 원화 가치는 8.4% 하락했다. 같은 기간 중국(-5.5%), 유로(-7.6%), 호주(-4.8%), 캐나다(-2.5%) 등은 통화 가치 절하율이 한국보다 낮았고 영국(-9.6%), 일본(-15.6%) 등은 한국보다 높았다.

이달들어서는 원화 가치가 지난달 말보다 4.6% 떨어져 같은 기간의 달러 절상률 3.1%보다 변동폭이 컸다.

◇ “저항선 무너져 단기적으로 1350원까지 상승 가능”

시장 전문가들은 강력한 심리적 저항선인 달러당 1300원선이 뚫림에 따라 환율이 단기적으로 1350원선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1300원이란 상징적인 ‘빅피겨’가 뚫린 만큼 시장의 강한 달러화 매도 심리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경기 침체 전망이 시장을 지배하고 한국의 수출 전망도 악화해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지는 상황”이라며 “달러당 1350원까지 상단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도 “1300원선은 금융위기 이후 한 번도 도달하지 않았던 레벨”이라며 “향후 1350원까지 상단을 열어둬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달러당 1300원대가 당분간 환율의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돌파한 것은 고달러, 고위험, 고유가의 조합이 일어났기 때문”이라며 “현재의 매크로(거시 경제) 상황에서 1,300원대 환율이 일시적으로 머물다가 내려갈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환율이 1300원대를 기록했던 2009년과 현재의 가장 다른 점은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가 당시 80대 중반에서 100대 중반으로 높아졌다”며 “1,300원이 뉴노멀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 일각에선 정부가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추진하는 등 시장에 강력한 안정화 신호를 보내야 원화 약세가 수그러들 것이란 시각도 있다.

◇ “단기 변동성 확대 불가피…조만간 안정될 것” 관측도

일부 전문가들은 외환시장의 단기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하지만, 일각에선 달러화가 1,300원선을 넘어 지속적으로 상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는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지금 환율은 오버슈팅 영역”이라며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고려했을 때 상대국 대비 지나치게 평가절하됐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등 미국 외 주요국이 긴축을 예고했고, 물가도 점차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며 “하반기로 갈수록 달러화 강세 압력이 점차 약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정희 국민은행 연구원은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물가 부담이 다소 완화되고 미 국채 금리 하락이 달러화에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환율이 장기적으로 1,300원선을 상회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환율의 가파른 상승에 따른 외환당국의 개입도 환율의 상승을 제약할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정부는 환율 상승에 따른 시장 불안 등 부정적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필요하면 시장안정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