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무서운 상승세’…월가 떤다

친노동 정책방향…’책임있는 자본주의’ 시동이 목적

40대까진 공화당원…”경제·민주주의 함께 구할 것”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출신의 파산법 전문가 엘리자베스 워런(민주‧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의 최근 지지율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올초 각종 여론조사에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물론 민주당 주요 후보들에게도 뒤지며 6위권에 머물던 워런이 ‘우크라이나 스캔들’ 이후 급부상하고 있다.

워런 의원이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가장 큰 수혜자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진짜 그의 저력은 세밀한 정책 기획력에 있다. 30일 기준 워런이 발표한 정책은 총 45개에 달한다. 출마를 공식화한 지난 1월 이후 일주일에 한 번꼴로 정책을 내놓은 셈이다. 이에 비해 민주당 지지율 1위 바이든의 정책은 10개에 불과하다.

대형 정보기술(IT) 기업 해체와 최대 연 3%의 부유세 부과, 국공립대 등록금 제로(0), 학자금 대출 변제 등 각종 파격적인 정책을 쏟아낸 워런 의원은 노동자 계급에 수십 가지 규제 대신 ‘크고 구조적인 변화’를 약속했다.

핵심 가치로는 ‘책임 있는 자본주의'(Accountable Capitalism)를 제시했다. △대기업 이사회의 40% 노조에서 선출 △노동부 장관에 노조 지도부 영입 △경영자 보수 제한 규정 등 노동자 친화적인 정책을 통해 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끔 기울어진 힘의 균형추를 맞추겠다는 것이다.

워런은 자신을 ‘급진 좌파’로 몰아세우는 공화당원들에게 “나는 뼛속 깊이 자본주의자”라 주장한다. ‘책임 있는 자본주의’는 체제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기업들이 이익 잉여금을 장기투자와 직원들의 임금 인상에 사용,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1980년대 초 자본주의 황금기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워런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소비자금융 보호관리국(CFPB) 특별고문으로 참여하며 월가를 휘어잡았다. 그래서 ‘월가 저승사자’란 별명도 붙었다.

그가 처음부터 민주당원이진 않았다. 워런은 40대였던 1990년대 중반까진 기업과 시장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보수주의자였다. 법대 교수 초창기 시절 워런의 동료들은 그가 마치 기업가라도 된 양 ‘정부 규제는 기업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가는 것 같다’고 비판했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던 그를 변화시킨 건 ‘파산법’이었다. 워런은 자서전 ‘싸울 기회'(The Fighting Chance)에서 “파산 신청을 한 가정은 모두 돈을 떼먹는 사기꾼들일거야”라는 생각에서 연구를 시작했다고 회고한다. 12살 때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쓰러지면서 파산 직전까지 갔지만 어머니가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자신의 가정사를 떠올린 것이다.

그러나 막상 1981~1985년 법원에 접수된 250만건의 파산 신청 사례를 분석해보니, 현실은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 대형은행들은 수익을 내기 위해 신용이 나빠 돈을 갚지 못할 형편의 사람들에게 계속 대출을 제공했고, 이들을 부도로 내몰았다는 게 워런이 얻은 결론이었다.

이후 펜실베이니아대에서 하버드대로 옮기며 학자로서의 삶에 집중하던 워런은 1995년 자신의 고교 시절 토론 대회 상대였던 마이크 시나 당시 민주당 하원의원의 설득에 파산제도 검토 특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이때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꾼다.

워런은 훗날 그 이유에 대해 “의회에 와보니 공화당원은 모두 대형은행 옹호자였다. 민주당 의원 절반도 은행을 옹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 편에 사는 사람은 항상 민주당 의원이었다”라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워런의 접근법에 대해 ‘포퓰리즘’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복스(Vox)는 “부자들 때문에 정부가 위태로워졌다며 부패 척결을 주장하는 워런의 연설은 트럼프식 인기영합주의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노조를 겨냥한 워런의 연설은 제조업 부활과 무역협정 재협상을 약속했던 지난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의 메시지와 다르지 않다. 워런의 포퓰리즘 메시지가 계속 울려 퍼지고 있다”고 평했다.

선출 가능성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대선에서 이기려면 중도파는 물론, 트럼프 정부에 반대하는 공화당원 일부까지 끌어들여야 하는데 그러기엔 워런 의원의 정책이 지나치게 편향적이라는 우려가 민주당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사례에서 경험했듯 기득권으로 분류되는 ‘백인 여성’이 대중의 호감도를 끌어내긴 어렵단 지적도 제기된다.

이 모든 우려를 딛고 워런이 제46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그가 만들어갈 미국은 어떤 모습일까. 워런은 대통령 취임 후 첫 행선지로 중남미를 택했다. 미국으로 내몰리는 중남미 극빈층을 직접 만나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는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꼽았다. 그 이유로는 “강력한 반독점법을 제정하고 경제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구했다”는 점을 들었다. 워런이 그리는 청사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워런의 도전이 이상주의자의 정치 실험에 그칠지 미국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전환점이 될지 미국 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