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50대 용의자에 법정 최고형…PTSD 호소에도 엄정 판결
별거 중인 부인을 폭행한 뒤 덕트테이프로 입과 팔다리 등을 결박해 야산의 구덩이에 생매장 하려했던 미국 워싱턴주의 50대 한인 남성에게 징역 13년형이 선고됐습니다.
워싱턴주 서스턴 카운티 법원은 최근 선고공판에서 지난 2022년 10월 2급살인 미수로 구속기소된 안채경씨에게 징역 13년형 보호관찰 3년과 평생 피해자 접촉 금지를 선고했습니다
납치 당시 입이 봉해진 상태에서 애플워치로 경찰에 신고했던 부인의 통화 내용은 급박했던 상황을 충격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날 공판에 참석한 부인 안영숙 씨는 통역사를 통해 폭행과 생매장 당한 당시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한국어로 진술하는 중간중간 말을 멈추며 고통스러운 듯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지난 3월 초 자신의 2급 살인 미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던 가해자 안씨는 머리를 모두 깎고 흰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법정에 나왔습니다.
안씨는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큰 상처를 드려 여러분께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 안씨의 법정진술이 이어지던 그때 갑자기 판사가 안씨에게 잠시 말을 멈추라고 지시합니다.
남편의 목소리를 듣던 부인이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공황발작 증상을 보이며 탈진했기 때문입니다
영숙씨는 응급치료를 받은 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고 이후 재판은 재개됐습니다. 이혼 수속중 별거 상태였던 가해자 안씨는 지난 2022년 10월 16일 이같은 끔찍한 범행을 저질러 전국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당시 안씨는 부인에 대한 접근 금지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어기고 일주일에 한 차례 정도 부인의 집을 찾아 세탁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당일에도 자녀들과 함께 교회에 다녀온 영숙씨는 집앞에 남편의 차량이 주차돼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하지만 집안에 있던 안씨와 부인은 은퇴자금 문제로 싸움을 시작했고 상황은 점점 악화됐습니다. 영숙씨는 이날 법정에서 아빠와 엄마가 싸우는 것을 보여주기 싫어 아이스크림을 사오라고 아이들을 내보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당시 남편이 “은퇴자금을 단 한푼도 주지 못한다”고 협박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영숙씨는 그런 남편에게 집에서 나가 달라고 요청했지만 남편은 부인에게 여러 차례 주먹을 날리고 폭행한 후 테이프로 부인의 손과 다리를 결박하고 눈과 입을 가린채 납치했습니다.
영숙씨는 애플워치로 가족 지인 등에게 비상 알림을 보내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안씨는 경찰이 도착하기 전 애플워치를 빼앗고 된 부인을 자신의 밴에 태워 7마일 정도 떨어진 숲속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 때 출동한 경찰이 간발의 차이로 납치 차량을 지나치는 안타까운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부인에게는 이미 가정 폭력 피해자 보호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기 때문에 워싱턴주 순찰대는 곧장 영숙 씨에 대한 실종 경보를 발령하고 소셜 미디어 상에 관련 정보를 게재한 뒤 이들의 소재 파악에 나섰습니다.
도주한 남편 안씨는 숲속으로 들어가 인의 가슴을 칼로 여러차례 찔렀습니다. 그리고 19인치 깊이의 구덩이를 파 부인을 밀어넣고는 흙과 나뭇가지 등으로 그 위를 덮었습니다.
영숙씨는 나중에 경찰 조사에서 남편이 자신을 생매장하기 위해 몸 위에 흙을 뿌릴 때마다 얼굴이 땅에 묻히지 않도록 계속 몸부림을 쳤다고 증언했습니다.
깜깜한 밤이 찾아왔고 17일 이른 새벽 가까스로 팔에 묶여 있던 덕트 테이프를 풀게 된 영숙씨는 눈과 입에 붙어 있던 테이프를 마저 떼어내고는 탈출기회를 엿봤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차량에 타고 있는 틈을 타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숲을 벗어나 30분 가얄 내달린 영숙씨는 마침내 처음 발견한 민가의 문을 두드려 극적으로 구조됐습니다. 당시 이 집주인은 새벽 1시경 영숙 씨에 도와달라는 다급한 외침과 함께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고 말했습니다.
감시카메라 영상에는 맨발인 영숙씨가 목에 테이프를 걸친 채 걸어오는 모습이 찍혀있습니다. 집주인은 911에 곧바로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부상당한 영숙씨를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영숙 씨가 구덩이에 파묻혀 있었던 시간은 대략 12시간 정도였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편 남편 안씨는 같은 날 아침 숲속에 산책 나온 시민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이날 법정에서 영숙씨는 남편이 출옥하면 또다시 자신을 죽이려 할 것이라며 생명이 걸린 문제인 만큼 가해자를 풀어주지 말 것을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반면 가해자 안씨 측 변호인은 퇴역군인인 안씨가 PTSD를 앓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고립되고 홈리스 신세가 되어 잠도 못 자는 등 인생이 바닥을 친 상황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이렇게 가해자 안씨의 때늦은 후회와 반성의 메시지는 절절했지만 판사의 판결은 엄정했습니다. 12시간 동안 파묻혀 목숨을 잃을 수 있었고 아이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겪었을 영숙 씨의 육체적 고통과 두려움 괴로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며 가해자 안씨에게 2급살인 미수에 대한 법정 최대 형량을 선고했습니다.
판사는 피해자인 영숙 씨를 향해서는 “당신은 강하고 용감하다. 앞으로 정서적 정신적 치유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했습니다.
안씨는 13년 형기를 채우고 석방되더라도 절대 총기를 소지할 수 없으며 숨이 다하는 날까지 평생 영숙 씨와 접촉할 수 없습니다.
이상연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