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영화상영 종료하고 리모델링 공사 한창
당초 계획보다 이른 폐관…영화팬들 아쉬운 발걸음
“어머. 벌써 문을 닫고 공사하네. 마지막으로 영화 한 편 못 봤는데….”
추석 연휴 첫날이었던 지난 14일 서울 중구 충무로 대한극장 앞.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인 극장 앞에서 하모(62)씨는 아쉬움에 쉽사리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하씨는 이달 말 대한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연휴를 맞아 마지막으로 동생과 극장을 찾았다고 했다.
대한극장을 운영하는 세기상사는 지난 4월 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9월 30일 극장 영업을 종료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씨는 “중학교 1학년 1학기 첫 중간고사를 마치고 학교에서 단체관람으로 영화 ‘쿼바디스’를 봤던 게 추억의 시작”이라며 “스무살 첫 데이트도 이곳에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몇 년 사이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는 게 익숙해지면서 통 못 왔는데 없어진다고 하니 젊은 시절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충무로라는 공간이 곧 한국 영화계를 상징했던 시절, 대한극장은 충무로의 간판 극장이었다.
1958년 단관극장으로 개관했던 대한극장은 ‘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 등 대작을 주로 상영하며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 왔다.
미국 영화사 20세기 폭스의 설계에 따라 건축된 대한극장은 영화를 볼 때 빛의 방해를 받지 않도록 설계한 대한민국 1호 ‘무창(無窓) 영화관’이었다.
특히 70㎜ 필름을 소화할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을 갖춰 초대형 화면에서 펼쳐지는 ‘벤허’의 전차 경주 장면에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탄성을 질렀다. 한때 ‘벤허 극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저마다 소중한 추억이 깃든 대한극장이 예상보다 일찍 문을 닫자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 한 관객들의 아쉬움은 더 크다.
극장은 지난달 말 영화 상영을 멈췄다. 이후 이달 8일까지 이어진 스포츠 브랜드의 팝업 행사를 끝으로 아예 문을 닫았다.
현재는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1번 출구 쪽에서 극장으로 들어갈 수 있던 지하 통로와 정문을 모두 막고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 중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근 몇 달 전까지 종종 극장을 찾았다는 유모(31)씨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대형극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립영화를 보러 다녔었다”며 “올 때마다 관객이 거의 없어 불안했는데 이렇게 빨리 없어지니 마치 동네에서 자주 가던 단골집이 사라진 듯 헛헛하다”고 말했다.
대한극장 공식 인스타그램에도 아쉬움 가득한 관객들의 댓글이 달렸다.
한 누리꾼은 “어릴 때 대한극장으로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던 게 생각난다”며 “추억이 많은 곳이라 꼭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고 적었다.
다른 누리꾼은 “9월 30일 전에 가려 했는데 상영을 안 해서 슬프다”며 “10월이 오기 전에 주말이라도 (극장을) 열어달라”고 했다.
멀티플렉스 시대가 도래하며 서울의 대표적 단관들은 하나둘씩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
단성사와 명보극장은 2008년, 서울극장은 2021년 문을 닫았다. 피카디리 극장은 2015년 CGV에 운영권을 넘겼다.
대한극장은 2002년 말 11개 상영관을 갖춘 멀티플렉스로 변모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과 온라인동영상 서비스(OTT) 등 성장에 밀려 수년간 적자가 누적되면서 폐업을 피하지 못했다.
세기상사는 대한극장 건물을 공연장으로 개조한 뒤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에서 흥행한 이머시브 공연인 ‘슬립 노 모어’를 선보일 계획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