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국투자 명목 2천억원은 어디로? ②

고려아연의 수상한 미국기업 투자, 조지아주 투자철회로 재조명

기술력 없는 신생기업 5800억원 인수…폐기물 처리시설만 운영

경영권 분쟁 중 전격 투자…고려아연 “2천억원 향후 투자에 사용”

한국 기업들의 미국 현지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 전기차 공장과 SK및 LG 그룹의 배터리 공장 건설 등이 집중되고 있는 조지아주에서 세계 최대 제련 기업인 한국 고려아연이 투자 약속을 파기해 한국의 신인도를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본보는 현지 탐사와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 문제를 3회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주

고려아연의 이그니오 투자계획. 1억5000만달러의 신주를 발행해 향후 확장에 사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에 8500만달러(한화 약 1100억원) 투자를 약속했다 철회해 물의를 빚은 한국 기업 고려아연이 해당 미국 계열사 이그니오(Igneo)를 인수한 과정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 1위 아연 제련기업인 고려아연은 지난 2022년 미국 전자폐기물 처리업체 이그니오 홀딩스 및 계열사의 지분 100%를 4억4200여만달러(한화 약 5819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고려아연은 3세 경영자인 최윤범 부회장의 신성장 전략에 따라 전자폐기물 공급망을 통해 원료 수급 리스크를 해결한다며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 이그니오는 어떤 회사

이그니오 홀딩스는 전자폐기물에서 구리와 금, 팔라듐 등 유가 금속을 추출하는 이른바 ‘도시 광산기업’으로 미국 비철금속 무역업체인 MCC가 프랑스 폐기물 업체 ‘위 메탈리카(Weee Metallica)’를 인수해 2021년 설립됐다.

당시 이그니오는 프랑스에 소규모 재활용 전용 제련소를 보유한 것 외에는 자산이 거의 없었고 특별한 기술력도 갖추지 못한 기업이었지만 고려아연은 미래 성장가능성이 있다며 2022년 7월과 11월 2차례에 걸쳐 5819억원을 투자했다. 실제 1차 투자 당시인 2022년 7월 이그니오의 자본금은 106억원, 매출액과 순이익은 각각 637억원과 32억원이었고 지분 100% 인수가 완료된 같은 해 11월에는 자본금 -18억원으로 완전 자본잠식상태가 됐다.

이그니오는 경쟁사들과 구분되는 특별한 기술력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가 미국 특허청에 확인한 결과 이그니오 계열사들이 보유한 특허 기술은 단 1건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향후 거액의 수입이 예상되는 계약이나 인허가권을 보유하지 않은 신생 폐기물 처리업체에 무려 5800여억원를 투자한 배경에 대해 미국 현지에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텍사스 샌안토니오에 위치한 이그니오 자회사 EvTerra 폐기물 처리공장. 지난해 오픈했지만 아직 간판이 설치돼 있지 않은 상태다.

◇ 2000억원 신규 투자 자금 주목

이처럼 소규모 폐기물 처리 기업이었던 이그니오는 2021년 10월 조지아주 사바나에 당시 자본금의 10배가 넘는 1100억원 짜리 제련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고려아연의 인수 발표 9개월 전부터 이미 대규모 확장을 예고한 것이다. 당시 이그니오의 대주주는 비철금속 무역업체 MCC(41.36%)와 호텔 등에 투자하는 미국 벤처캐피털 타사디아(Tarsadia, 49.7%)였다.

이그니오의 이같은 선행 투자 계획을 뒷받침하듯 고려아연은 2022년 7월 1차로 이그니오 지분 72%를 3억3200만달러(한화 약 4324억원)에 인수하면서 이 금액에 신주 발행비용 1억5000만달러(한화 약 2000억원)를 포함시켰다. 이는 거꾸로 고려아연이 실제 인수 시점 이전부터 조지아주 사바나 투자를 비롯한 이그니오의 ‘몸집 키우기’에 관여한 정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본보가 확보한 이그니오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이 신주 발행 비용은 ‘향후 확장을 실행하기 위한(excute further expansion)’ 명목의 자금이다. 고려아연은 이 돈으로 미국 동부 조지아주 사바나에 이어 서부 라스베이거스에도 추가 제련소를 건설하고 이그니오 자회사인 EvTerra를 통해 미국 전역과 멕시코에 폐기물 수집 및 처리시설을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2023년 2월에는 미국 내 제련소를 3개로 늘리겠다는 계획까지 밝혔다.

하지만 현재 이그니오가 추가로 집행한 투자는 EvTerra의 폐기물 수립 및 처리시설 4곳 뿐으로 미국 애틀랜타와 시카고, 라스베이거스, 텍사스 샌안토니오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 시설들은 기존 창고건물을 임대해 폐기물 처리장비만 설치하는 수준이어서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은 조지아주 사바나 제련소 건설 포기 이후에는 어떠한 추가 투자 계획도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기업의 5800억원 규모 미국 자회사가 따로 떼어놓은 신규 투자 자금 2000억원의 행방이 궁금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본보에 보낸 해명자료를 통해 “신주 인수 대금 2000억원은 미국 자회사인 페달포인트에 그래도 남아있으며 이 자금은 미국 투자에 계속 사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려아연 측은 이어 “이그니오 인수를 포함한 본사의 투자전략은 조지아주 사바나에 국한되지 않고 향후 다양하게 집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 고려아연은 어떤 기업?

세계 최대 아연 처리시설인 온산제련소로 유명한 고려아연은 글로벌 1위 아연 제련업체이며 재무구조가 탄탄한 알짜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2022년 취임한 최윤범 회장은 가문의 3세 경영자로 부회장을 맡은 직후인 2021년부터 최대주주인 (주)영풍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영풍은 지난 1949년 황해도 출신인 장병희, 최기호 창업주가 공동 창업한 회사로 1970년 경북 봉화군에 영풍 석포제련소를 건설하며 비철금속 업종에 진출했다. 고려아연은 영풍이 1974년 설립한 계열사로 1978년 온산제련소를 설립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온산제련소는 석포제련소의 부설 시설로 건설됐지만 이후 확장을 거듭해 세계 최대 제련소가 됐다.

이후 영풍을 동업하던 장씨와 최씨 가문은 내부 협의를 통해 영풍 및 전자계열사는 장씨 가문이, 고려아연과 비철금속 계열사는 최씨 가문이 경영을 맡아왔고 이후 평화가 지속됐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상속 등으로 지분구조가 변하면서 장씨 가문의 지분이 많아져 현재 영풍은 장씨 가문 52.6% 최씨 가문 17.84%, 고려아연도 장씨 가문 33% 최씨가문 15.63%가 됐다.

양 가문의 평화는 창업주 3세인 최윤범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깨지기 시작했고 고려아연은 경영권 행사를 위해 다양한 우호지분 확보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 한국 증권가의 분석이다. 실제 영풍 측은 무분별한 유상증자를 제한하는 내용의 고려아연 정관을 변경하려는 최씨 가문에 맞서 올해 주총에서 표 대결을 벌여 이를 무산시키기도 했다. 주총에서 이같은 대립이 벌어진 것은 영풍그룹 설립 이후 처음이다.

특별취재팀

고려아연 한국 온산제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