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연매출 600억 신생기업 5800억에 인수 ③

고려아연, 조지아주 투자 철회 이그니오 인수 과정 의혹

유일한 매출은 폐기물 시설뿐…그나마 건물 임대해 사업

신규 투자명목 2,000억 제외한 3,800억 행방도 의문일어

매출 1조6천억 회사는 740억원에 인수…투자 실패 가리기?

고려아연이 2021년 설립돼 연매출 600억원대에 불과한 미국 전자폐기물 재활용 기업 이그니오 홀딩스(Igneo Holdings)를 무려 5,800억원에 인수한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 인수 때 “친환경 탄소 중립 기여”…“기술력 떨어지고 탄소 배출 많아” 말 바꿔

고려아연은 2022년 7월 이그니오 홀딩스를 인수하면서 “자원 생산과 폐기, 재생산까지 가능한 자원 선순환 구조의 기업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제시했다. 또한 이그니오는 연간 9만톤을 처리하는 조지아주 서배너 제련소 건설 등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통해 글로벌 성장 전략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최윤범 고려아연 부회장은 미국 언론에 “이번 이그니오 인수는 RE100(100%재생에너지만 사용하는 캠폐인) 달성과 친환경 탄소중립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그니오는 지난해 6월 8500만달러(약 1160억원)를 들여 조지아주 서배너에 짓겠다던 전자폐기물 재활용 제련소 투자 계획을 돌연 철회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관계자는 “이그니오의 전자폐기물 파쇄 기술이 떨어지고 환경 측면에서도 탄소 배출이 많아 불필요한 제련소라는 판단에 따라 투자 철회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이그니오 인수 당시의 평가와는 상반된 것이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고려아연 계열 이그니오 자회사 EvTerra의 폐기물 처리시설.

◇ 이그니오 지난해 폐기물 시설 관련 매출 809억원에 불과

서배너 제련소 투자를 철회한 이그니오는 자회사 EvTerra를 통해 미국 애틀랜타와 시카고, 라스베이거스, 텍사스 샌안토니오 등 총 4곳에 폐기물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모두 임대된 건물에 폐기물 처리 장비만 설치해 운영되고 있다.

EvTerra 본사와 1호 전자폐기물 시설은 10만평방피트(약 2800평) 규모로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다. 컴퓨터와 가전제품 기판 등에서 구리와 금 등을 추출하기 앞서 폐기물을 분쇄하고 분류하는 작업을 하는 곳이다.

애틀랜타 시설 직원은 “이곳에서 분류된 기판 등은 해외 제련소로 보내져 금과 은, 구리 등으로 탈바꿈한다”고 말했다. 직원이 말한 해외 제련소는 이그니오 프랑스와 고려아연의 온산제련소를 뜻한다. 애틀랜타에서 4시간 거리인 서배너 제련소가 세워졌으면 손쉽게 이뤄졌을 작업이 엄청난 물류 비용이 더해져 비효율적인 공정을 거치는 셈이다.

서배너 제련소 건설이 무산되면서 현재 이그니오 계열사 중 매출을 올리는 곳은 EvTerra 시설 4곳과 이그니오 프랑스 제련소뿐이다. 그나마 고려아연이 이그니오를 인수할 당시 영업을 하던 곳은 재무제표상 연매출 637억원에 불과한 프랑스 제련소 1곳이었다. 이 때 애틀랜타 1호 EvTerra 시설이 문을 열었지만 매출은 없던 상태였고, 나머지 시설도 고려아연 인수 이후 설립됐다. 시설 4곳이 모두 가동된 2023년 매출도 809억원 수준으로 EvTerra 법인 자체의 경쟁력과 시장성에 의문이 일고 있다. 미국 전자폐기물 처리 시장은 현재 경쟁이 치열하고 수익성도 약화하고 있어 문을 닫는 업체가 속출하는 상황이다.


텍사스 샌안토니오에 있는 고려아연 계열 이그니오의 자회사 EvTerra의 폐기물 시설.

◇ 시장 경쟁력과 수익성 의문시되는 신생기업 가치 과대평가 의혹

특히 본보가 입수한 이그니오 프랑스 제련소 재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이 650만유로(96억원)로 전년보다 오히려 108만유로(16억원) 감소했다. EvTerra는 지난해 2월 싱가포르 본사의 폐기물 처리업체 프로큐리(Procurri)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면서 미국 내 전자폐기물을 프랑스와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에서 처리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기존 이그니오 프랑스의 일감마저 고려아연에 몰아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고려아연 인수 당시 이그니오의 자본금은 106억원, 부동산이나 공장설비 등 유형자산은 416억원에 불과했고 부채는 250억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고려아연은 미국도 아닌 프랑스에 소규모 제련소 1곳을 보유한 기업을 장래성이 있다며 무려 5819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고려아연의 당시 재무보고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그니오의 무형자산(브랜드가치, 기술력, 인적자원 등)을 671억원으로 계산했고, 순자산의 공정가치는 2416억원이라고 밝혔다. 소규모 프랑스 제련소 외에는 미국 내 자체 특허나 매출 실체가 없었던 신생 기업의 가치를 과대평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고려아연 재무보고서에 나타난 이그니오(Igneo)의 자산 현황.

◇ 올해 4월 연매출 1.65조에 순익 36억인 ‘캐터맨’ 인수 배경에도 관심

고려아연은 이그니오 인수 대금 5,819억원 중 신주 발행 명목으로 떼어놓은 2, 000억원을 미래 투자자금으로 활용해 미국내 제련소 3곳을 짓고 미국 전역과 멕시코 등에 EvTerra 폐기물 처리시설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서배너 제련소 건설을 포기한 이후 어떠한 추가 투자계획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신 고려아연은 지난 4월 갑자기 미국 비철금속 트레이딩 업체인 캐터맨의 지분 100%를 5500만달러(740억원)에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의 2023년 매출은 1조6500억원대로 5819억원에 인수한 이그니오의 같은 기간 매출보다 20배가량 많다. 고려아연의 이그니오 인수가 정상적인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캐터맨 또한 지난해 1조6500억원대 매출에 비해 순익은 36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수익률이 매우 낮고, 순익도 매년 감소하는 회사다. 더욱이 이 회사가 미국 JP모건체이스은행에 지고 있는 부채 2694억원에 대해 고려아연이 채무 보증하는 조건이어서 캐터맨 인수 결정의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그니오 인수 과정의 의혹과 투자 철회, 저조한 매출 등을 희석시키기 위해 매출이 많은 캐터맨을 인수해 재무상태를 포장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면서 “사실상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한 이그니오에 투자한 5819억원 가운데 신규 투자용 비축금 2000억원을 제외한 3819억원이 제대로 쓰였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결국 고려아연은 이그니오 5819억원과 캐터맨 인수액 740억원, 캐터맨 채무보증 2694억원 등 9200억원 이상을 미국 투자 명목으로 쏟아부었지만 재무제표상 매출액만 ‘과대포장’해주는 캐터맨 외에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비록 이그니오가 미국에서 경쟁력을 입증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지만 프랑스에서 공장을 운영하며 관련 기술력과 업력을 쌓았고 이러한 기업은 흔치 않다”면서 “이그니오의 경험과 기술은 자원순환 사업을 미래 50년 먹거리 사업으로 낙점한 당사에 꼭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고려아연은 이어 “우리가 보유한 세계 제1의 제련 기술력과 풍부한 자금력, 자원순환 사업에 대한 의지 등이 이그니오의 경험 및 기술과 결합하면 향후 전자폐기물이 다량으로 배출될 미국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러한 점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돼 이그니오에 과감한 투자를 했다”고 밝혔다.

캐터맨 인수와 관련해서도 고려아연은 “캐터맨 인수로 미국 자회삭 페달포인트의 규모가 40% 가량 커졌고 적자 폭도 줄었다”면서 “캐터맨을 통해 전 세계의 전자폐기물을 모으고 이를 이그니오와 고려아연에서 농축 및 제련해 구리 등으로 만드는 구조가 점점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고 해명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