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직전까지 “초방빙 접전” 예상…뚜껑여니 기록적 대패
인기없는 바이든·검증 안된 해리스…’최악의 듀오’ 후회
핵심 이슈 대신 낙태권 등 상대방 약점만 노리다 ‘폭망’
참패후 자중지란…’바이든 사퇴 늦어’ vs ‘오물 같은 후보’
본보 이상연 대표기자가 한국 매체 뉴스버스에 게재한 칼럼을 전재한다. /편집자주
지난 10월 25일 미국 대선의 최대 경합주 가운데 하나인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합동 유세가 열렸다. 이번 대선 선거기간 중 처음으로 열린 오바마와 해리스의 공동 무대를 보기 위해 미식축구 경기장에 지지자들이 빽빽이 들어섰다. 찬조 연사와 록스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무대에 이어 오바마 전 대통령이 연단에 올라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놀라운 광경은 오바마가 해리스를 소개하며 무대에서 내려가자 펼쳐졌다. 이날의 주인공인 해리스의 연설이 시작되기 전인데도 청중들이 유세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가는 흑인 유권자에게 떠나는 이유를 묻자 “오바마를 보러 왔기 때문”이라고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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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앞선 10월 8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공중파 방송인 ABC-TV의 인기 토크쇼 ‘더 뷰(The View)’에 출연했다. 부통령까지 올랐지만 일반 미국인들에게는 개인적인 이야가기 잘 알려지지 않은 해리스에게는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진행자가 “당선되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다르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자 해리스는 당황하며 “하나도 생각나는 게 없다”고 답변했다. 지지율이 낮은 바이든과 차별화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스스로 이를 걷어차는 모습에 오바마의 오랜 선거참모였던 데이비드 악셀로드는 “재앙적”이라고 한탄했다.
지난 5일 실시된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예상보다 훨씬 큰 격차로 꺾고 제47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번에 민주당 후보인 해리스가 기록한 패배는 역사적으로 유례가 드문 참패여서 그 원인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트럼프는 미국 전체 득표수(popular votes)에서 해리스 보다 3.3% 많은 50.9%를 득표해 공화당 후보로서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를 꺾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전체 득표수에서 앞섰던 지난 2004년 대선은 9.11 테러의 상처를 극복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던 부시 정부가 국민 통합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던 때였다.
미국 현대 대선에 경합주라는 개념이 등장한 이래 모든 경합주를 한 후보가 독식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는 애리조나와 네바다, 위스콘신, 미시건,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펜실베이니아 7개주를 석권했고 해리스와의 경합주 표차도 110만표 이상으로 늘려 지난 대선 바이든에게 55만표차로 뒤졌던 패배를 깨끗이 설욕했다. 범위를 좁히더라도 민주당이 꼭 지켜야하는 중서부 3개주를 가리키는 ‘블루 월’인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건, 위스콘신주에서 모두 패한 민주당 후보도 해리스가 처음이다.
예상을 넘어선 참패에 민주당이 현재 심각한 자중지란을 겪고 있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뉴욕포스트는 6일 단독 기사를 통해 “선거 패배 직후 해리스 캠프가 바이든 대통령과 질 바이든 여사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지율이 바닥인 상태에서 바이든이 늦게 사퇴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제대로 선거를 치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해리스 캠프 일부 인사는 질 바이든 여사와 영부인 부속실장이 백악관을 주무르며 월권을 일삼았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바이든 여사가 선거일에 공화당 상징색인 빨간 원피스를 입고 투표에 나선 이유도 이같은 내부 갈등이 드러난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반면 바이든과 측근들은 해리스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모는 “해리스는 원래 ‘S***(오물)’ 같은 후보였다”면서 “그레첸 휘트머 미시건 주지사나 로이 쿠퍼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를 임명했다면 선거에서 승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바이든 측근은 “해리스의 선거본부장인 젠 오말리 딜론은 거만하기만 한 멍청이”라며 “오바마가 아닌 해리스에게 오바마식 전략을 시도했다. 해리스와 딜론 콤비는 최악이다”라고 비난했다.
USA투데이는 해리스 캠프가 보여준 선거전략의 난맥상도 패인으로 지적했다. 이번 대선의 핵심 이슈인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등 경제 문제와 무너진 국경에 대한 불안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대응책을 거의 내놓지 않고, 대신 낙태권과 성 소수자 보호, 민주주의 위기 등 트럼프의 약점만 공략하는 소극적 전략을 펼쳤다는 것이다.
또한 효과가 떨어진 것으로 평가받는 자원봉사자들의 유권자 가구 방문 캠페인에 거액을 투입하다 이를 포기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화당 측에서는 “트럼프 캠프는 단 한번의 가구 방문도 하지 않았지만 큰 표차로 승리했다”며 해리스 캠프를 비웃기도 했다. 미국 언론들은 “사상 최대 규모인 10억달러(1조4,000억원)의 선거 자금은 도대체 어디에 쓰인 거냐”며 선거캠프의 무능을 지적하고 있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지율 30% 대의 인기없는 바이든 대통령과 그가 지명한 해리스 후보의 역량 부족, 초보가 모인 것 같은 선거캠프의 전략 부재 등이 어우러져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보수 매체들은 특히 해리스가 개표 결과를 함께 지켜보기 위해 모인 지지자들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전혀 준비되지 않은 후보였다”는 공격까지 펼쳐 해리스의 정치적 재기 여부에 대한 의문부호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