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애틀랜타 소녀상 논란, 바른 해법은?

평화의 소녀상 한인회관 설치 놓고 한인사회 분열 위기

“독단적 기습결정” 오해가 논란불러…공감대 조성 필요

조형물 등 하드웨어 넘어 교육 등 소프트웨어 주력해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확립하기 위해 설치되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둘러싸고 일본 측이 아닌 한인사회 내부에서 노골적인 반대 의견이 돌출돼 주목받고 있다.

애틀랜타 평화의 소녀상 건립위원회(위원장 김백규)는 지난 16일 애틀랜타한인회관 건물 앞쪽 화단에 애틀랜타의 2번째 소녀상을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건립일자는 오는 8월 15일 광복절이며 이미 조형물을 만들어 사바나항을 통해 수송 중이라는 설명이었다. 한인회(회장 이홍기)는 당일 이사회를 열어 건립을 인준했고 이를 전격 발표했다.

이같은 발표가 나오자 몇몇 한인 인사들은 기자에게 “한인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자기들(건립위) 마음대로 한인사회의 상징적 공간인 한인회관에 소녀상을 설치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한 단체장은 “한인회장과 이사회가 소녀상 건립위원회의 거수기가 됐다”며 공론화 절차가 생략된 결정에 아쉬움을 보였다.

특히 한국 여권에 줄을 대고 있는 일부 인사는 “윤석열 정부가 일본과 관계 개선을 하고 있어 외교적으로도 좋지 않고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 도움도 되지 않는 소녀상 건립을 몇명이 밀어붙이고 있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했다.

이후 한 한인신문은 이러한 목소리를 바탕으로 “한 지역에 2개의 소녀상이 필요없다”는 논리로 소녀상 건립에 공식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에 건립위 자문변호사는 “공청회 등 공론화 절차가 오히려 일본 측의 반대를 낳을 우려가 있다”면서 “뉴욕과 뉴저지에도 5개의 소녀상이 존재한다”는 반론을 게재했다.

◇ 일본 반대 피하려다 한인사회 반발 불러

하지만 논란은 잠잠해지지 않았고 일부 전직 한인회장들이 이홍기 현 회장에게 이메일 등을 통해 “역사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등의 이유로 한인회관 내 설치 반대의사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면서 소녀상을 둘러싼 분열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본 측의 반대를 피한다는 이유로 한인들의 동의 절차를 생략되면서 오히려 한인사회 내부의 반발을 부르는 악수를 둔 셈이다. 사실 사유 부지인 한인회관에 조형물을 설치하면서 일본 측의 반대를 의식할 필요는 없다.

또한 뉴욕과 뉴저지에 5개의 소녀상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2017년 뉴욕한인회관 5층의 한인이민사박물관에 설치된 소녀상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조형물은 모두 문자로 기록된 위안부 기림비이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기 보다는 첫번째 소녀상이 위치한 브룩헤이븐에서 10마일 가량 떨어진 한인회관에 제2의 소녀상을 건립해야 하는 당위성을 제대로 알려야 했다.

이렇듯 여러 논란이 있지만 한국 정치공학에 관심있는 일부 인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반대의사는 “한인사회의 공동 소유인 한인회관에 사조직(건립위)이 독단적으로 건립을 결정하고 이를 기습 발표했다”는 절차적인 문제점에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는 않지만 이미 한인회관 2층에 평화의 소녀상 기념 공간이 있기 때문에 한인회관에 소녀상을 건립하는 문제는 공론화 과정만 거쳤더라면 지금같은 반발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최선의 해법은 소모적인 논란을 중단하고 제막행사 일정을 연기하는 것이다. 불과 보름 정도 밖에 남지 않은 8월15일 광복절에 소녀상 제막식을 거행한다면 축제가 아닌 갈등의 분위기에서 행사가 치러질 수 밖에 없다. 한인사회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는 행사에 주류사회 정치인들을 초청해 축하를 부탁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 상징적 조형물 뒷받침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중요

건립위원회와 한인회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한인회관 내 소녀상 건립의 목적과 필요성을 알리고 한인사회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예상과는 달리 한인 대다수가 반대한다면 건립을 포기하는 용기도 가져야겠지만 한인사회가 이런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소녀상이라는 상징적 조형물을 넘어서는 교육 프로그램을 계발하고 실천해야 한다. 어느 사회나 그렇듯 이민 1세대들은 건물과 상징물 등 ‘하드웨어’에 집착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가 상징하는 정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이다.

건립위는 “백인 변호사가 기부한 5만달러를 이용해 다른 공간에도 소녀상을 추가 건립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 돈은 소녀상이 상징하는 여성 인권과 전쟁범죄 예방의 중요성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에 투자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기자도 개인적으로 지난 27~28일 워싱턴DC에서 열린 한인 차세대 정치 참여 프로그램을 취재하면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이를 위해 평화의 소녀상 건립위원회도 이름을 바꾸고 세대를 아우르는 한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조직으로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건립’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으면 하드웨어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연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