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대통령 선거와 인지 부조화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의 정국과 관련해 한국 뉴스 전문채널인 YTN에 5차례 출언해 미국 현지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해당 방송분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유튜브와 페이스북에서 기자에게 새로운 별명을 붙여주는 이용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중국 공산당’이라는 별명이다. 이유는 방송에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당선인’이라고 불렀고, ‘미국 대선에서 벌어진 총체적인 선거부정’을 부각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자의 발언들이 ‘중국 공산당’으로 연결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선거, 특히 대통령 선거는 스포츠 경기 못지않게 강력한 팬덤이 나타나는 이벤트이다. 자신이 열렬히 응원하는 사람이나 팀이 지게 되면 해당 팬들에게는 ‘인지 부조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겨야만 하는 ‘내 것’이 현실에서는 패배했을 경우 곧바로 체념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대부분은 이를 심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현실을 부정하거나, 판단기준과 가치관 자체에 왜곡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것으로 보도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 가운데 심각한 인지 부조화 현상을 겪고 있는 미주 한인들, 심지어 고국의 한국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다.

문제는 이들이 의존하는 ‘가상현실’이 자신들이 믿고 싶은 소식만을 전해주는, 트럼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의사(Pseudo, 비슷하지만 가짜)’뉴스 사이트와 소셜미디어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데 있다. 이른바 ‘주류 언론’의 보도는 모두 가짜라고 매도하면서 같은 편의 뉴스만 소비하는 것은 모래 속에 머리를 박고 있는 타조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애틀랜타 한 단체장은 이틀전 기자에게 “로렌스빌(귀넷카운티 청사가 있는 곳)에서 큰 일이 있어서 곧 조지아주 선거결과가 뒤짚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마 귀넷카운티 투표용지가 실제 투표자보다 2배 많은 8만여장이라는 뉴스를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민단체들의 노력으로 귀넷카운티는 영어와 스페인어 2종류로 투표용지를 만들었다. 당연히 투표용지가 2배여야 하고 조지아주 내무부도 기자회견에서 이를 설명했다.

공화당의 정강과 정책에 대해 공식적인 지지를 보내왔고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했던 한인사회 원로들은 오히려 이같은 주장에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오히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중도인 척 했던 한인들이 확인도 되지 않은 선거부정 루머와 가짜로 판명이 난 동영상까지 퍼나르며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모두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현재까지 선거결과를 뒤집을 만한 결정적인 증거라고 내놓은 것들이 모두 헛웃음을 자아낼 만한 수준이라는 사실은 본인들도 잘 알 것으로 보인다.

한 예로 우체국에서 우편투표를 분류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찍은 투표용지를 마구 버리는 동영상이 증거라고 유포됐지만 결국 가짜뉴스로 판명났다. 미국에서 투표를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2개의 봉투에 밀봉되는 우편투표 용지를 그렇게 처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한 한인언론은 가짜뉴스의 천국인 페이스북마저 허위로 판정한 ‘미시간주 사망자 1만명 투표 의혹’을 확인된 사실이라며 버젓이 보도하고 있다.

특히 이들 자칭 ‘한인언론’들은 자신들은 중립이라고 주장하면서 아예 바이든 후보를 당선인으로 발표한 주류 언론사들을 점잖게 꾸짖고 있다. 보수매체의 정점인 폭스뉴스까지 ‘바이든 당선인’이라고 지칭하니까 아예 “언제부터 언론이 당선인을 결정했느냐”고 핏대를 올린다. 물론 언론이 당선인을 결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각 언론은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당선인이라고 부를 수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미국 정치와 언론, 나아가 미국 민주주의의 전통이다.

그동안 미국 주류 언론사들의 뉴스들을 정신없이 번역해오던 이들 한인언론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폭스뉴스를 포함한 주류언론은 모두 가짜뉴스로 분류하고 에포크타임스, 브레이트바트, 프로젝트 베리타스 등 일부 소스만을 인용해 선거부정이라는 프레임을 이끌어가고 있다. 에포크타임스가 어떤 매체인지 제대로 알고 인용을 하는지 궁금한 일이다.

이들의 주장대로 아직 선거는 끝나지 않았다. 미국 헌법에 따라 각 주정부가 선거인단을 확정하고 법원에 제기된 소송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차기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확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가짜뉴스와 허위 사실을 확인도 하지 않고 퍼나른다면 그 책임이 가볍지 않을 것이다. 부디 미국 선거제도에 대해 공부하고, 자신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주류 언론들이 주장하는 논점이 무엇인지도 살펴보라고 당부하고 싶다.

이상연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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