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기씨 “비대위와 대화, 진퇴 일임” 약속해놓고 비대위 비난 기자회견
“동포청-총영사관에 ‘패싱’당했다” 푸념…결국 본인 비리로 자초한 결과
지난해 7월 이홍기씨는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한인회장에 출마한다며 한인회 계좌의 공금 5만달러를 몰래 빼내 자신의 계좌에 입금한 뒤 이를 후보 등록을 위해 사용했다는 사실이 본보에 의해 처음 보도된 직후였다.
이씨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취재에 나선 기자에게 “정말 잘못했다.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자신이 저지른 일이 큰 잘못이라는 사실 쯤은 알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씨의 태도는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돈을 다시 갚았으니 제발 ‘도둑’이라고는 부르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러더니 얼마 후에는 “돈을 다시 돌려 놓았는데 무슨 횡령이냐”고 반박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해 연말쯤에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 나는 한인회장을 하면서 가장 돈을 많이 쓴 사람”이라며 오히려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꾸짖는 모습을 보였다.
한인사회는 물론 한국 정부, 나아가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이라면 이씨에 대한 평가가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거듭된 사퇴 요구에 대해 처음에는 “도둑이라는 오명만 벗게 해달라”고 호소하더니 최근에는 “내가 왜 물러나느냐”는 입장을 보였다.
이홍기씨는 한인회를 위해 헌신했다는 사실만 인정해 달라고 주장하지만, 그의 재정 운영 방식과 공금 사용이 불투명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 위임장 공개되자 ‘소설’ 주장
그러던 그가 최근 갑자기 ‘위임장’을 작성했다.
자신의 측근인 주중광-신현식씨에게 “한인회 정상화를 위해 모든 권한을 일임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자신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고 있는 비상대책위원회의 사퇴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로 보였다.
하지만 비대위 인사들과 이씨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씨의 위임장을 믿지 않았다.
그가 작성했던 다른 각서와 위임장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비대위와의 대화에 나선 이홍기씨 측 인사 가운데 한 명은 “오늘 얘기가 잘 됐으니 이홍기씨를 만나 설득하면 될 것 같다”고 했지만, 자신들에게 전권을 위임한 사람을 왜 다시 설득해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결국 이홍기씨는 며칠 후 본보가 위임장 작성과 대화 내용을 보도하자 이를 문제삼아 신현식씨를 통해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그리고 지난 21일 한인회관에 기자 몇명만 불러서 기자회견을 했고, 위임장 내용을 보도한 본보 기사를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양측 관련자들을 취재해 보도한 본보 기사가 소설이라면 본인이 위임장을 쓴 이유와 한인회 정상화를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를 직접 밝히면 된다.
◇ 한인회 법인 명의 바꿨다며 경찰 신고
이씨는 이날 김백규 위원장을 비롯한 비대위 인사들이 조지아 주정부에 등록된 법인 운영자 명의를 임의로 변경했다는 사실을 고발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했다고 한다.
자기가 CEO여야 하는데 김 위원장이 CEO로, 김 위원장의 측근인 박건권씨가 CFO로 등록됐다는 내용이었다.
이전에는 이홍기씨가 CEO이자 CFO, 시크리터리를 모두 맡고 있었다.
비대위가 명의를 변경한 이유는 이씨가 이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경찰을 동원하고, 변호사를 통해 출입금지 경고장을 보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인회장이라 할지라도 다른 한인들의 회관 출입을 막을 권한은 없기 때문에 이번 일도 결국 이씨가 자초한 결과다.
이사장이 사퇴하고 임원도, 활동도 거의 없는 ‘식물 단체’의 명의가 왜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이씨는 경찰에 형사고발까지 했다고 한다.
이씨는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사법기관으로부터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고, 비대위가 남발한 소송에서도 지지 않았다”면서 자신한테는 잘못이 없는데 본보를 비롯한 언론이 명예훼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상식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고도 법적인 처벌만 받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최소한 본인을 공인이라고 여긴다면 주장할 만한 얘기가 아니다.
이날 이씨가 했던 발언의 하이라이트는 ‘패싱’이다.
기자회견에 초대댔던 애틀랜타 중앙일보에 따르면 이씨는 최근 이상덕 재외동포청장의 동포 간담회에 자신을 초청하지 않았다며 “이상덕 청장과 서상표 애틀랜타총영사가 제대로 된 의식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제대로 된 의식을 갖고 있는 동포청이나 총영사관이라면 이홍기씨 및 이씨가 사실상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인회를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마비되다보니 왜 자신이 패싱됐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옳고 그름’ 대신 ‘적과 아군’ 이분법으로 사태 인식
이씨 직전 한인회장은 불투명한 재정운용으로 한인회에서 영구제명된 김윤철씨였다.
당시에도 비리 혐의가 드러난 김씨를 옹호하던 인터넷 언론이 있었다.
애틀랜타 중앙일보 출신이었던 허겸이라는 기자다.
그는 본보 등 한인 언론들이 김윤철씨를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할 때마다 사사건건 김씨의 입장을 변호하는 반박기사를 내보냈다.
허씨가 이런 기사를 내보낸 것은 김씨와 그를 둘러싼 몇몇 인사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일 뿐 사실을 보도하는 저널리즘과는 거리가 멀었다.
애틀랜타를 떠난 허씨는 최근 한국의 ‘중국인 간첩 99명 체포’ 가짜뉴스와 관련해 KBS와 MBC 방송의 메인뉴스를 장식하는 인물이 됐다.
미군 블랙요원이라고 주장하는 한국 육군 병장 출신의 황당한 주장만을 믿고 연이어 가짜뉴스를 내보내다 형사고발돼 출국금지를 당하고 곧 중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였다.
특히 취재과정의 녹취록이 모두 공개되면서 얼마나 형편없는 윤리의식과 저널리즘 소양을 갖고 있는지 전국민에게 낱낱이 드러났다.
애틀랜타에서도 그랬지만 ‘옳고 그름’의 판단이나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본 의식도 없이, 적과 우리편을 나누는 양분법과 클릭수에 현혹돼 선동을 일삼는 사람의 목소리는 언제나 위험하다.
이홍기씨는 비대위와의 협상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대신 자신을 옹호해주는 일부 언론 및 몇몇 주변 인사들과 ‘버티기’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백규 위원장 측에는 절대 한인회를 빼앗길 수 없다”는 일부의 응원이 이씨가 이런 무모한 선택을 한 이유일 수도 있다.
‘적과 아군’을 극단적으로 나눠 사회를 분열시키고, 내 편과 함께 그릇된 일도 옳은 일로 밀어붙이는 것이 바로 파시즘이다. 파시즘은 결국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
이상덕 재외동포청장이 동포 간담회를 연 이유는 오는 4월 17일 개막하는 애틀랜타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의 성공을 위한 것이다.
애틀랜타 한인사회 역사상 최대 규모의 축제가 열리지만 그 중심에 있어야 할 애틀랜타한인회는 전세계적으로 패싱을 당할 형편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한인회관을 자력으로 마련한 자랑스러운 애틀랜타한인회는 동포청 뿐만 아니라 한국 지자체나 기업들에게 ‘가까이해서는 안될 존재’가 됐다.
이씨는 지금이라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씨 입장에서는 비대위가 과도한 압박을 가하고 이른바 ‘인격 살인’을 했다고 느낄 수 있다.
본보를 비롯한 한인 언론들의 비판이 가혹했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반감이 자리를 지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무너져 내리는 한인회를 방치하면 할수록 본인은 물론 한인사회도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애틀랜타 한인들은 잘못을 빨리 잊고, 쉽게 용서해준다.
하루빨리 결단하는 것만이 본인의 오명을 씻는 유일한 길이다.

